한국일보

숲속의 산책로

2018-11-03 (토) 윤재현 전 미 국방부 군수청 안전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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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비치 엘도라도 공원 건너편에 네이처 센터가 있다. 우거진 숲속에 산책로가 터널처럼 뚫려 있어 나는 모자를 쓰지 않고 산책한다.

숲속에는 산책을 흥미롭고 즐겁게 만들어주는 볼거리가 있다. 나무마다 풀마다 피는 꽃과 활기차게 사는 동물들의 모습이다. 이곳은 작은 동물원이다. 다람쥐, 산토끼, 뱀, 독수리, 오리, 자라, 너구리 등 남가주 일대의 야산에서 사는 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사무실이 있다. 그 안에 기념품점이 있고 짐승과 곤충의 표본이 진열되어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살아있는 뱀이다. 황갈색 뱀이 유리통 안에서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 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꼬인 뱀도 저렇게 아름다운 색이었을까.

산책로가 시작되는 호수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자라들이 있다. 부교(浮橋) 위에 냄비 뚜껑만큼 큰 녀석부터 손바닥만 한 작은 녀석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다. 하늘을 우러러보는 모습이 너무나 경건하다.


그들은 폭이 두 자도 되지 않는 부교에서 자리다툼도 하지 않고 선착순으로 올라가서 일광욕을 즐기다가 한 놈이 물속으로 들어가면 다음 놈이 또 올라간다. 해변에서 좀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새벽부터 나가서 자리다툼 하는 사람들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참나무 숲 사이로 실개천이 흐르는 여울에 모양이 작은 황새 같은 해오라기가 외다리를 하고 물속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다. 잽싸게 새끼 물고기를 낚아챈다. 또 한 마리 낚아챈다. 그 민첩함이 놀랍다. 내가 지켜보고 있는데도 상관하지 않고 물속을 주시하고 있다. 살기 위해서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아침 일찍 산책하면 모든 동물이 이렇게 아침밥을 먹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실개천엔 이끼에 엉킨 수초가 자라고 있다. 그 위를 너구리가 마치 일본 스모 선수들이 왼발과 바른발을 올렸다 내려놓듯이 방아를 찧고 있다. 먹이를 더듬고 있다.

시골에서 자랄 때 싸리나무를 엮어서 만든 통발로 저수지의 수초 위를 내려치면 붕어가 들어가서 요동을 쳤다. 손으로 잡아냈다. 너구리는 뒷다리가 통발 역할을 한다. 먹이가 밟히면 앞발로 잡아서 아작아작 씹어 먹는다.

가장 재미있는 쇼는 오리가 보여주었다. 물속에서 헤엄치던 오리 두 마리가 뭍으로 올라왔다. 수놈이 암놈에게 고개를 한번, 두번, 세번 숙여 경례를 하니 암놈이 한번 답례를 했다. 그리고는 수놈이 암놈 위로 올라탔다. 너무 신기해서 스마트 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했다.

조류 특히 오리는 교미하기 전 수놈이 애교 춤이나 재롱을 떤다고 한다. 결합 전 예의와 격식을 갖추는 오리. 그들에겐 ‘미투’가 없다.

주위에 우울증에 시달리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에게 이 숲속의 산책로를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활기차게, 열심히 사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면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다.

도시 한 가운데 이렇게 좋은 숲속의 산책로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 연간 입장료가 60달러, 50세 이상은 35달러이다. 요즘 한국말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삶에 충실한 동물들의 모습을 즐기면서 나는 숲속의 산책로를 걷는다.

<윤재현 전 미 국방부 군수청 안전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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