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 지지자의 얼굴

2018-11-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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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 등 미 유력 정치인들에게 폭탄소포를 보낸 혐의로 체포된 시저 세이약은 어떤 인물일까. 지금까지 드러난 것으로 보면 그는 열렬히 트럼프를 지지하는 공화당원이다.

2016년 트럼프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는 별 볼일 없는 백인 하류층이었다. 스트립 클럽 매니저로, 레슬링 선수로 일했으며 최근 직업은 피자 배달원이었다. 10년 넘게 집 없이 트럭에서 살았다. 절도와 사기, 마약소지 혐의로 체포된 전과도 있다. 그의 트럭은 트럼프가 싫어하는 민주당 정치인들을 표적으로 한 사진, 머리 잘린 인형, 교수형에 처해진 흑인, 반동성애자 사인, KKK 심벌 등으로 뒤덮여 있다.

그를 고용했던 피자집 매니저는 “그는 세상과 흑인, 유대인, 동성애자에 매우 분노해 있었다”며 “‘내 마음대로 하자면 모든 동성애자와 흑인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세상을 되찾아야 겠다”는 말을 종종 되 뇌이곤 했다고 한다.


증오와 분노 속에 무의미한 삶을 살던 그에게 2016년 트럼프의 등장은 구원이었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자기 생각을 대변해주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자기 같은 사람이 못사는 것은 모두 멕시칸 불법체류자와 중국인들 탓이며 자기 같은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위대한 미국을 재건하겠다는 그의 공약은 복음처럼 들렸다.

그가 왜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폭탄을 보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동기를 추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신이 구세주처럼 모시는 트럼프가 그토록 증오하는 정치인을 제거하는 것이 자신과 트럼프가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세이약 같은 인물은 극단적인 케이스며 모든 지지자가 그와 같지는 않다고 주장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트럼프 지지자 중 상당수는 세이약과 비슷한 성향을 보이고 있다. 최근 월스트릿 저널 보도에 따르면 대학 졸업장이 없는 백인남성의 압도적 다수는 트럼프와 공화당 지지자들로 민주당 지지자보다 42% 포인트 많다. 반면 대학을 나온 백인여성은 절대 다수가 민주당 지지로 공화당보다 33% 포인트 많다.

이들이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들의 공화 민주당 지지 비율은 비슷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그 대답은 소득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대다수 미국민 소득은 줄어들었지만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의 수입은 경기회복과 함께 개선돼 금융위기 전 수준을 넘어섰다. 반면 대학 졸업장 없는 백인남성의 소득은 아직도 10년 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세계화와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특수 기술이나 지식이 없는 노동력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딱한 처지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대변인이 필요했다. 그 때 혜성과 같이 나타난 것이 트럼프다. 이들에게 트럼프의 낮은 도덕성이나 막말은 감점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과의 동질성을 확인시켜 주는 흥분제다. 이들 열렬 지지층 성원 없이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 불가능했음은 물론이다.

1주일도 채 남지 않은 미 중간선거는 현재 연방상원은 공화당, 하원은 민주당의 승리로 끝날 것으로 점쳐지고 있지만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이번 선거는 골드 미스와 고졸 총각의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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