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불릿’

2018-10-27 (토)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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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릿’
사람을 깔보는 듯한 새파란 눈동자의 시선과 매력적으로 인색한 미소를 지녔던 쿨 가이 스티브 맥퀸을 액션 스타로 신격화한 영화는 형사스릴러 ‘불릿’(Bullitt^사진)이다. 갱스터 범죄영화의 금자탑과도 같은 ‘불릿’이 이달로 개봉 50주년을 맞아 요즘 미 전국 대도시에서 재상영 되고 있다.

‘불릿’하면 대뜸 생각나는 것이 형사 불릿으로 나온 맥퀸이 복잡한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초고속으로 질주하는 자동차 추격 장면이다. 맥퀸이 차를 타고 도주하는 킬러를 쫓아 포드머스탱 390GT를 모는 장면은 자그마치 10분간 계속되는데 대부분 스피드광인 맥퀸이 직접 시속 120마일로 차를 몰며 찍었다. 나도 이 장면 때문에 ‘불릿’이 TV에서 방영될 때면 다시 보곤 한다.

자동차 추격의 전설이 되다시피 한 이 장면을 찍는데 총 3주가 걸렸는데 맥퀸은 샌프란시스코의 자동차 경주장에서 옆에서 달리는 스턴트 드라이버를 따라 맹연습을 했다.


맥퀸은 이렇게 위험한 장면을 직접 하겠다고 우겨 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가 전전긍긍했다고 하는데 맥퀸은 영화의 제작에서부터 영국인 감독 피터 예이츠의 선정에 이르기까지 영화 전반에 걸쳐 철저히 주도권을 행사했다. 제작비 550만 달러가 든 영화는 빅히트, 총 4,230만 달러를 벌었는데 이는 현 시가로 3억 달러에 이른다.

로버트 본과 재클린 비셋이 공연한 ‘불릿’은 후에 나온 액션영화들인 ‘프렌치 커넥션’과 ‘히트’ 및 ‘제이슨 본 ’시리즈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오스카 작품과 감독 및 남우주연상을 탄 ‘프렌치 커넥션’에서 형사 포파이(진 해크만)가 고가전철을 타고 달아나는 헤로인 밀수범을 쫓아 복잡한 뉴욕시내를 초고속으로 차를 모는 장면은 ‘불릿’의 추격 장면을 연상시킨다.

맥퀸은 온 몸에서 허위란 찾아 볼 수 없었던 생생한 실물이었다. 과묵하고 섹시한 야생동물과도 같은 남성다움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맥퀸은 온순해 보이기까지 하는 마초기질과 카리스마가 가득한 분위기로 인해 생전에는 물론이요 죽은 지 40년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웬만한 살아 있는 배우들 보다 더 유명한 배우다.

맥퀸은 폐암으로 1980년 50세로 사망했는데 당시 아내는 범죄영화 ‘겟어웨이’에서 공연하다 사랑에 빠졌던 알리 맥그로였다. 공연 시 맥그로는 패라마운트 사장 로버트 에반스의 부인이었다. 신문들은 맥퀸과 맥그로의 로맨스를 놓고 ‘미녀와 야수’의 결합이라고 대서특필했었다.

1980년은 내가 미국에 온 해로 그 때 맥퀸이 암치료를 위해 일종의 비법치료를 한다는 의사를 찾아 멕시코에 갔다는 신문보도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병을 못 고치고 귀국했는데 그 후 수술을 받기 위해 다시 멕시코에 갔다가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그에 관한 기록영화에 의하면 맥퀸은 죽음과 필사적으로 다투다가 지쳐 마지막에는 “대츠 잇”하며 싸움을 포기했다.

거칠면서도 상냥한 양면성을 지녔던 맥퀸은 늘 변두리를 밟으며 스릴을 좇아 산 국외자였다. 그가 나온 ‘주니어 보너’ ‘탐 혼’ ‘신시내티 키드’ 및 ‘헌터’ 등은 다 이런 변두리 인물이 주인공이다. 맥퀸의 국외자 생활 스타일은 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관계가 있다고들 한다.

그는 아버지를 모른 채 태어나 어렸을 때 알콜중독자인 어머니로부터도 버림받고 인디애나주의 농부인 삼촌 밑에서 자랐다. 불량아였는데 그는 이렇게 배드 보이가 될 소지가 충분히 있었는데도 오히려 배드 보이의 어두운 매력과 장난기를 십분 발휘해 자기 인기형성에 이용했다. 맥퀸은 자기주장이 강해 할리웃에서 다루기 힘든 배우로 딱지가 붙었었는데 그래서 자기를 스타로 만들어준 ‘황야의 7인’과 ‘대탈주’를 감독한 스승과도 같았던 존 스터지스와도 결별하고 말았다.


해병대 출신으로 G.I. 빌로 뉴욕의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연기공부를 한 뒤 무대와 라이브TV로 배우생활을 시작한 맥퀸은 많은 웨스턴에 나왔다. 배우 초기 시절 나온 TV시리즈 ‘원티드:데드 오어 얼라이브’를 비롯해 ‘황야의 7인’, ‘네바다 스미스’ 및 ‘탐 혼’ 등이 다 웨스턴이다.

맥퀸은 ‘황야의 7인’ 영화 전편을 통해 불과 20여 줄의 대사(그는 대사를 싫어했다)밖에 구사하지 않았는데 그는 여기서 공연한 선배 빅스타 율 브린너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기 위해 자기 멋대로 독특한 행동을 해 브린너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다는 일화가 있다. 맥퀸은 자동차만 잘 탈 뿐만 아니라 ‘대탈주’에서는 모터사이클을 ‘황야의 7인’에서는 말도 잘 탔는데 그의 자동차 질주 실력이 과시된 또 다른 영화는 그랑 프리를 다룬 ‘르 만스’다.

맥퀸은 생전 “나는 연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반응하는 사람이다”라고 자신의 본능적인 연기관을 피력했다. 그의 연기는 생경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퀸이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영화는 캔디스 버겐과 공연한 ‘샌드 페블스’ 단 한편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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