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수계 우대’에 관한 이상한 케이스

2018-10-19 (금)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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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버지니아, 노폭에서 한 백인여성이 체포되었다. 마가렛 더글러스라는 이 여성의 죄목은 교회 주일학교에서 ‘자유인 유색 아동들‘에게 글을 가르친 것. 1847년 버지니아 주법은 “읽기나 쓰기를 가르칠 목적으로 흑인 노예/자유인과 어울리는 백인은 구금 및 벌금형에 처해 진다”고 명시했다.

흑인은 글을 알 필요가 없다며 교육자체를 금지한 것이 미국의 오랜 역사이다. 흑인은 ‘재산’일 뿐 인간이라는 인식이 없었다. 흑인이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나고 3개 수정헌법이 제정되고 부터였다. 노예제가 폐지되고(수정헌법 제13조),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인종과 무관하게 미국시민이며(제14조), 시민은 투표권을 갖는다(제15조)는 내용이다.

그러나 법은 법일 뿐, 흑인차별 의식은 바뀌지 않았다. 백인들은 특히 흑인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을 혐오했다. 20세기 중반까지 미국의 교육이 ‘분리 그러나 평등(Separate but Equal)’을 원칙으로 삼은 배경이다.


백인들은 ‘분리’에 집요하고 철저했다. 허먼 스웨트라는 휴스턴의 흑인 청년은 1946년 텍사스 대 법대에 지원했다. 대학 측은 흑백 ‘분리’를 내세우며 입학을 불허했고 그는 소송을 제기했다. 판사는 대학의 손을 들어주는 대신 주정부에 흑인 법대를 만들라고 명령했다.

학교를 새로 만들지언정 백인학교에 흑인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1954년 연방대법이 ‘분리 평등’을 위헌으로 판결하기 전까지 흑인은 물론 아시안, 라티노 등 모든 유색인종은 백인들 다니는 학교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흑인민권 운동가 클레논 킹은 대학에 가려다 정신병원에 갇혔다. 1958년 그가 미시시피 대학에 입학원서를 내자 흑인이 백인학교에 들어가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정신이상이라는 것이었다.

수백년 지독한 차별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불공정한 환경에 대한 배려가 만들어낸 것이 어퍼머티브 액션, 소수계 권익옹호조치이다. “법적보장에도 불구하고 차별이 개선되지 않으니 공격적 노력이 필요하다, 연방기금 수혜기관들은 차별철폐를 확실하게 지지하는 행동(Affirmative Action)을 취해야 한다”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1년 행정명령을 내린 것이 시작이었다.

소수계 권익옹호/우대 정책이 비상한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 15일 시작된 하버드의 아시안 지원자 차별에 관한 재판이 소수계 우대정책에 대한 재판으로 가닥을 잡는 분위기이다.

대학 캠퍼스에서 소수계 우대정책은 아시안 학생들에게 불편하다. 흑인이나 히스패닉 등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에게 입학 문턱을 낮춰줌으로써 기회를 준다는 원칙에는 동의하더라도 그로인해 당장 불합격의 피해가 돌아올 경우 이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는 해도 이번 재판이 소수계 우대정책 폐지로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행정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비영리단체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FFA)’이다. 단체 설립자 에드워드 블룸은 아시안도 학생도 학부모도 아니다. 66세의 보수 백인남성이다. 그는 사람들이 피부색으로 판단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자신의 소신이라고 말한다.

얼핏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연상시키지만 두 사람의 입장은 정반대이다. 한사람은 차별받는 소수인종들을 위해 민권운동에 나섰고, 다른 사람은 소수계 옹호조치로 손해 보는 백인들을 위해 소송에 나섰다.


그가 처음 소송을 제기한 것은 1992년 휴스턴에서 공화당 후보로 연방하원에 도전했다가 패한 후였다. 선거구가 소수계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구불구불 그려졌다며 ‘인종적 게리맨더링’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까지 올라간 후 1996년 그는 승소했다.

이후 그가 ‘소수계 우대이다’ 싶은 투표권리법 조항, 대학의 소수계 우대정책들에 제기한 행정소송이 20여건이다. 2008년 백인 여학생 피셔가 텍사스 대학에서 불합격한 후 제기한 역차별 소송도 그의 작품이다.

소수계 우대로 차별 당했다는 피해자들을 모집하고, 보수재단들로부터 거액을 지원받아, 막강한 공화당 변호사들을 통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정치적으로 바른’ 정책들을 가차 없이 공격하는 용기 있는 인물로 칭찬받고, 다른 편에서는 소수계가 인종차별 역사를 극복하도록 돕는 모든 시도들을 잘라내려는 백인 보수 부유층의 도구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번 재판의 이슈는 인종차별이다. 소수계 우대정책이 아니다. 하버드가 입학사정에서 아시안에게 차별적이라는 사실은 하버드 내부조사에서도 밝혀졌다. SFFA가 아시안을 앞세워 소수계 권익옹호조치를 없애려 한다는 뒷소문은 불쾌하다. 아시안이자 소수계로서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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