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값있는 삶

2018-10-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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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사람 하나만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은 빌 게이츠를 생각할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워 80년대 개인 컴퓨터 혁명을 주도한 사람이 그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제일 돈 많은 사람을 들라 해도 역시 그를 택할 것이다. 최근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에게 자리를 내주기는 했지만 지난 수십년간 세계 부자 랭킹에서 1위 자리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립자인 폴 앨런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컴퓨터 업계 전문가들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우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사실 앨런이라고 말한다. 게이츠보다 두 살 많으면서 시애틀의 명문 사립고 레이크사이드 동문인 그는 학교 다닐 때부터 컴퓨터 전문가로 게이츠와 친했다.

앨런은 SAT 1,600점 만점을 받고도 워싱턴 주립대에 진학하지만 그마저 불과 2년만에 그만 두고 보스턴에 있는 허니웰 사에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취직한다. 마침 인근 하버드에 다니고 있던 게이츠를 꼬여 중퇴시킨 후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창업한 것도, 회사 이름을 지은 것도 앨런이다.


당시에는 기업에서 쓰는 대용량 컴퓨터와 대비해 크기가 작은 개인용 컴퓨터를 마이크로 컴퓨터라 불렀다. 이 컴퓨터에 쓰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니까 이보다 적절한 이름은 생각하기 어렵다.

마이크로소프가 처음 한 일은 IBM 컴퓨터 운영체계인 DOS(disk operating system)를 개발한 일이다. 앨런은 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IBM에 공급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러나 잘 나가던 앨런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1982년 불과 29살의 나이로 림프종 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다행히 방사선 치료와 골수 이식 등으로 치료에는 성공하지만 이를 계기로 회사를 떠나게 된다.

이 때 빌 게이츠는 자기가 소프트웨어 개발에 더 공이 크다며 회사 지분을 60대 40으로 나눌 것을 제안하며 앨런은 이를 수락한다. 게이츠는 또 주 당 5달러로 앨런의 남은 지분을 인수할 것을 제의하지만 앨런은 이를 거부한다. 그가 그 때 이를 수락했더라면 게이츠의 재산은 지금의 두 배가 되고 앨런은 빈털터리가 됐을 것이다.

그가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난 후 회사 주식은 상승에 승상을 거듭, 그를 억만장자로 만들어줬다. 그는 이 돈으로 ‘벌칸’을 창립해 투자와 연구, 자선사업 등을 하며 일생을 보냈다. 뇌 구조를 연구하는 앨런 뇌과학 연구소, 인공지능 연구소, 세포학 연구소 등이 모두 그가 세운 것이다. 그는 또 시애틀 시호크,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 구단주이기도 하다. 그는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지켜 교육과 환경보호, 야생동물 보전 단체에 20억 달러가 넘는 돈을 주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 15일 림프종 암이 재발하면서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사망 당시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주식 1억 주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재산은 2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는 평생 결혼한 적이 없으며 자녀도 없다.

그의 사망 소식을 들은 빌 게이츠는 “그가 없었더라면 개인 컴퓨터도 없었을 것”이라고 애도의 뜻을 표했으며 월스트릿 저널은 “앨런이야말로 비전을 가진 혁신가이며 빌 게이츠는 실용적인 비즈니스맨”이라고 평했다.

의학이 발달한 100세 시대라지만 아직도 70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사람도 많으며 돈이 많은 억만장자도 거기서 예외는 아닌가 보다. 요즘 기준으로는 짧은 생을 알차게 살다간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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