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2년 후 지구의 운명

2018-10-13 (토)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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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 중의 하나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를 생각하며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능력이다. 학생들이 밤잠을 줄이며 공부를 하고, 서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돈을 모으는 이유는 하나이다. 머릿속에 꿈꾸는 미래를 갖고 싶기 때문이다. 훌륭한 과학자, 의사, 변호사…가 되어있는 자신의 모습, 내 집을 마련해 가족들이 안락하게 사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 즐거움에 오늘의 고단함을 잊는다.

그렇다면 앞으로 12년 후 지구의 미래를 상상하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며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학자들이다.

온난화로 지구의 기후와 환경은 시시각각 변하는 데 그 속에 의탁해 살고 있는 77억 인구 대부분은 태평하다. 바작바작 속이 타들어 가는 사람들은 극소수, 과학의 눈으로 지구의 미래를 보는 전문가들뿐이다. 과학자들의 경고는 다급하다. “대재앙으로부터 우리를 구할 계획이 필요하다. 시간이 별로 없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인천 송도에서 총회를 열고 지난 8일 ‘지구 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채택했다. 보고서의 핵심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온도 상승폭을 섭씨 1.5도(화씨 2.7도)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 1.5도를 넘어서는 순간 지구의 환경은 완전히 바뀐다, 인류의 생존이 심각하게 위협받는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2030년이면 1.5도 임계점에 도달한다는 내용이다.

지구의 평균온도는 현재 섭씨 14.79도(2015년 기준, 화씨 58.62도) 수준. 산업혁명이 일어난 18세기 중반 이후 섭씨 1도가 높아졌다.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된다는 1.5도까지 남은 상승폭은 0.5도. 화석연료 시대를 끝내고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대전환이 필요한데 그렇게 노력할 시한이 2030년, 앞으로 12년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보고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0년 수준보다 45% 줄이고, 2050년 까지는 ‘순 제로’ 수준에 도달해야 인류가 살아남는다고 경고한다. ‘순 제로’는 배출된 만큼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 제거하는 상태. 물리적 화학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에너지, 교통, 산업, 건축, 도시 등 이제까지 우리가 살아온 생활전반을 다 바꾸어야 하는 엄청난 과업이다.

과학자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경고를 시작한 지는 오래 되었다. 지난 1992년 11월, 노벨상 수상자들을 비롯한 세계적 과학자 1,700명은 ‘인류에게 보내는 세계 과학자들의 경고’를 발표했다.

인간의 활동이 환경과 자원에 극심하고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끼치고 있어 이대로 가다가는 기존의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것이다, 파국을 면하려면 근본적 변화가 시급하다며 인간의 행동 변화를 촉구했다. 뒤이어 교토 기후변화 협약, 알 고어의 ‘불편한 진실’ 캠페인, 파리기후협정, 그리고 2017년 인류에게 보내는 과학자들의 2차 경고 등이 이어졌지만, 그래서 각 나라별로 온실개스 배출억제 시도가 있기는 하지만 ‘1.5도’ 목표에 이르려면 턱없이 부족하다.

국가 차원의 정책변화가 시급한데 미국을 비롯해 모두가 미온적이다. 일종의 ‘공유지의 비극’이다. 동네에 좋은 목초지가 있으면 목동들이 경쟁적으로 소나 양을 몰고 와 풀을 뜯게 해서 결국은 풀이 사라지고 가축을 키울 수 없게 되는 비극이다.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대기오염이 배출국 상공에만 머물면 좋겠지만 지구 전체 즉 공유지로 퍼져 피해를 공유하게 되니 어느 나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지구온난화는 단순히 기온만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고온 건조한 기후로 산불은 더 심해지고, 바닷물 온도 상승과 함께 허리케인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지고,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져 해안지대 주민들은 집을 잃게 될 것이며, 더운 날씨에 질병이 창궐하고, 극한의 가뭄으로 식량부족 사태가 생겨 인류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경고한다.


기후변화라는 지구적 문제 앞에서 개인으로서 우리는 무력감을 느낀다. 나 한사람 노력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는 생각이다. 환경보존 운동가들이 즐겨 하는 벌새 이야기가 있다.

산에 불이 나자 벌새가 부지런히 호수를 오가며 부리로 물을 날라 뿌렸다. 이 광경을 본 다른 동물들은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느냐?”고 비웃었다. 벌새는 말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거야.”

기후변화로 인한 대재앙 앞에서 우리는 한마리 벌새 같은 작은 존재들이다. 하지만 수천만, 수억의 벌새들이 각자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기적처럼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으로서 유권자로서 정부에 대한 압력이 그 하나이다. 12년 후 지구의 운명이 우리 손에 달려있다면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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