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거짓말이라는 생존술

2018-10-06 (토)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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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CEO인 댄 와이스 박사가 대학생이던 1970년대 케네디 공연예술 센터 기념품점에서 일을 했다. 기념품점은 300명 가량의 노년층 자원봉사자들로 느슨하게 운영이 되었다. 금전출납기도 없어서 물건을 팔고 나면 서랍에 돈을 넣었다. 모두가 나이 지긋하고 여유로운 예술 애호가들이니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기념품점의 연 수익 40만 달러 중 누군가가 15만 달러를 훔쳐간 것이었다. 기념품점 매니저로서 와이스는 조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누군가 한 사람이 거액을 착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 기품 있는 노인 수십명이 제각기 조금씩 돈을 훔쳐내며 좀도둑질을 한 것이었다.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으니, 견물생심이 발동했다.

사람은 얼마나 정직할 수 있을까. 정직은 최선의 정책이라고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점점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거짓말은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습득된 일종의 생존술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언어를 갖게 된 직후부터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거짓말을 동원한 번드르르한 화술은 완력을 쓰지 않고도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체득하면서 인류조상들의 생존기술로 발전했다는 해석이다.


이런 맥락에서 거짓말을 잘 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거짓이 탄로 나도 끝까지 우기는 것이 기술이라면 요즘 미국사회에서 그것은 생존술을 넘어 출세의 기술이다.

거짓말에 한 치의 거리낌이 없는 도널드 트럼프가 국가 최고지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리고 있고, 미국사회를 한바탕 뒤흔들어 놓은 존 캐버노 연방대법관 지명자 인준청문회 역시 ‘거짓말이다, 아니다’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캐버노 인준을 두고 격렬하게 대립한 공화/보수 진영과 민주/진보 진영 모두 ‘거짓말인지 아닌지’ 그 자체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에 부합하는지 안하는지에 온통 관심이 쏠려있었다는 것이 서글픈 현실이다. 거짓말을 해도 도덕적 흠집이 나지 않는다면 그런 사회는 문제가 있다.

듀크 대학의 행동경제학 교수인 댄 애리엘리 박사는 거짓말 심리의 권위자이다. 수만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들을 토대로 ‘부정직에 대한 (정직한) 진실’이라는 책을 썼다. 그의 대표적 실험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문제풀기 실험이다. 5분 동안 문제를 풀고 정답만큼 돈을 주기로 했는데 보통 20문제 중 4개를 맞췄다.

이어 문제를 풀고 시험지를 분쇄기로 없앤 후 정답 개수를 말하라고 하자 정답은 평균 6개로 늘어났다. 연구진은 시험지가 분쇄되지 않도록 미리 조작해 두었지만 학생들은 증거가 없다는 생각에 거짓을 보탠 것이었다. 그렇다고 10개, 20개를 맞췄다고 간 큰 거짓말을 한 학생은 별로 없었다.

그의 결론은 사람은 거의 모두 거짓말을 한다는 것, 대부분은 약간씩 거짓말을 하고, 심하게 거짓말하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어느 선 이상의 거짓말을 하지 않을까가 그의 관심사였다. 정직에 대한 이 사회의 가치관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작은 이익을 위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혹은 남의 기분을 생각해서 이런 저런 거짓말을 하면서 속기도 하고 속이기도 하며 우리는 살아간다.

문제는 어느 선 이상의 거짓말, 정직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심각한 거짓말이다.
다행히 이런 거짓말을 하고도 살아남는 생존술은 별로 없어 보인다. 지금 무사하다고 영원히 무사하다는 보장은 없다.


캐버노가 처음 대법관에 지명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법조인으로서 그의 탁월한 경력, 자신 만만하고 반듯한 모습에 매료되었었다. 10여년 전 반듯한 이미지로 한때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던 인물이 있었다. 2000년대 정계의 신성으로 떠올랐던 존 에드워즈 전 연방 상원의원이다. 상원 임기 한번 마친 신인이 2004년 민주당 대선지명전에 뛰어들더니 그해 민주당 대선후보인 존 케리의 러닝메이트가 되었고, 이에 실패하자 2008년 다시 대선에 도전했다. 그만큼 그의 인기가 대단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완전히 추락했다. 거짓말 때문이었다. 헌신적인 아내가 암으로 투병하고 있는데, 다른 여성과의 혼외정사로 아이까지 두었다는 사실이 2008년 대선 캠페인 중 터져 나왔다. 그는 완강히 부인했다. “허구다, 완전한 거짓말이다”라고 얼굴 색 하나 바꾸지 않고 부인했지만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이후 아내는 사망하고 동거하던 여성과도 헤어졌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추레하게 늙어가고 있다고 한다.

거짓말쟁이가 받는 최대의 벌은 그가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누구도 곁에 남아있지 않는 날이 온다는 것이다. 거짓말 생존술을 너무 믿지 말아야 하겠다. 길게 보면 결국은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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