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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창] 다시 만난 가을

2018-10-06 (토) 12:00:00 정지현(UC버클리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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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다.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서서 학교를 갈 때 느껴지는 가을냄새는 늘 나를 설레고 기분좋게 했다. 살짝 코끝 시리는 차가움과 코막힘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고, 외롭기보다 고독해지는 그 느낌과 맑은 생각들이 참 좋았다.

하지만 2014년 미국에 유학을 오고나서부터는 내가 원하는 느낌의 붉은빛 가을을 제대로 느낄 기회가 없었다. 늘 좋은 날씨인 캘리포니아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단풍이 주는 형형색색의 붉은빛 가을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베이지역은 기후면에서 1년 내내 봄, 가을 날씨인 곳이지만,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느낌들이 그리웠었다.

그러다 잊고 있던 가을의 느낌을 로드트립으로 온 오레곤주에서 여실히 다 느낄 수 있었다. 차를 타고 캘리포니아를 넘어 오레곤주로 오니 고속도로 옆에 단풍으로 우거진 나무들을 보니 어찌나 설레고 흥분되는지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면세와 커피, 그리고 비로 잘 알려진 조금은 심심한 주, ‘포틀랜드’가 그중 가장 유명한 도시로, 조금 심심한 느낌을 주는 여유롭고 친절한 사람들, 고소한 커피향, 조금씩 내리는 비, 따뜻한 단풍들 그리고 세금이 붙지 않아 저렴한 물가는 행복 그 자체였다.


2년 전 봄, 처음 포틀랜드에 왔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차를 타고 두시간을 달려 포틀랜드를 벗어나 마운트 후드에 있는 호숫가에 갔을 때는, 아름답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이 자연이 경이로웠다. 내 눈으로 본 것만큼 카메라 렌즈에 담기지 않는 풍경들을 보며, 참으로 선명한 내 눈에 감사했고, 이 아름다움을 가족들과 나눌 수 없다는 생각에 미안했고, 내 몇 개의 단어들과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엄청난 자연에, 내 표현력이 아쉬웠다.

호수를 가운데 두고 둘러싼 가을 나무들과 그 호수에 비친 맑은 하늘과 가을 나무들, 그리고 그곳에서 조그만 배를 타고 있는 노부부는 한폭의 그림보다 아름다웠다. 그림보다 아름다운 장면 속에 있는 노부부를 보며, 나도 누군가의 눈에는 한폭의 그림보다 아름다운 장면 속에 있는 사람일 수 있기에, 그 사실에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꼭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다시 오는 그날, 그때는 좀 더 오래 머물다 가야겠다. 오랜만에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느낀 가을은 행복이었다.

<정지현(UC버클리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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