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름, 그 강을 건너다

2018-09-29 (토) 최동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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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마치 목덜미에 찬 물이 닿은 것처럼 느껴졌다. 여름이 강을 건너나 보다. 몸을 웅크려 이불을 끌어당기며 내일은 한 뼘쯤 열어 둔 창문을 닫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산 아래로 내려오니 한나절 걸음이면 들이 닥칠 거리에 가을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나는 아직 몸에 붙은 여름 찌꺼기를 모두 털어내지 못한 까닭에 마음이 조급해 진다. 오랫동안 미뤄 왔던 화해. 서푼 짜리의 관용, 비루했던 오만. 얄팍한 인내 같은 구차한 언어들로 포장하며 간신히 이어가던 나의 하루는 오늘도 여름을 따라 강을 건너지 못한 채 길을 잃었다. 어쩌면 모르는 척 놓아두고 싶은 마음 또한 ‘나’ 일지도 모르겠다.

미국에 와서 처음 내 집을 마련했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낯선 땅에서 힘들게 마련한 첫 보금자리였기에 마당에 피는 이름 모르는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에도 마음이 쓰이고 정이 갔었다. 휴일이면 아내와 꽃을 심기도 하고, 아이들과 뒤뜰에서 숲 사이로 보이는 작은 연못까지 가는 오솔길을 만들기 위해 어설픈 삽질로 땀 흘리던 시절이었다.

오랜 시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숲에는 자작나무가 쓰러져 뒤엉키고, 잡풀이 우거져 흔적으로만 남은 길이 있었다. 그 길이 연못과 한 걸음씩 가까워질수록 숲으로 가는 길은 그만큼 신비로웠다. 생을 마친 나무 밑둥에서 새 순이 올라오고 햇살이 머물고 지나간 자리마다 꽃이 피었다.


그리고 시간은 그 어린 나무의 작은 잎도 붉게 물들이며 가을이 왔음을 알게 하고, 다시 발 밑에 그 잎을 내려놓아 양분으로 삼게 했다. TV에서 방송되는 다큐멘터리에서나 본 듯한 풍경이 날마다 창 밖에 펼쳐지는 것을 바라보며 계절의 변화를 제일 먼저 받아들였던 때이기도 하다. 순환은 지극히 평온했고, 모든 생명의 신비가 같은 무게로 존귀하다는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이제 작은 도시는 휴가에서 돌아온 사람들로 다시 생기를 찾았다. 여름 내내 따가운 햇살만 머물던 타운 센터의 주차장에는 빈자리를 찾는 자동차들이 꼬리를 물고 서있다. 옷가게는 늦은 시간까지 오픈 사인을 내걸었고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마네킹은 말갛게 빛나는 유리창 너머에서 손님을 기다린다.

평소 빈 가게처럼 조용하던 이발소는 옆집의 피자가게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핸드폰 속 세상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피자가게 창밖으로 들려오는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하늘만큼 푸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피자 가게로 들어가고, 꽃을 한 다발 안은 중년의 사내가 환하게 웃으며 그 옆의 꽃집을 나선다. 마주 오는 그 사내와 눈인사를 나누며 나도 따라 웃는다. 이제 여름은 사람들의 감성 속에서만 뜨거운 계절로 스멀스멀 기어 다닐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여름의 끝을 잡고 익숙한 산책길로 향했다. 지평선 끝까지 키를 늘린 그림자 하나가 나를 따라 나섰다. 낯선 고요 속에 잠겨도 보고 내가 딛는 발자국 소리에 화들짝 놀라기도 하며 강가를 서성거린다. 순해진 햇살이 적당히 빛바랜 의자에 시치미를 떼고 앉아 있다. 나도 그 옆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며 허수아비처럼 팔을 벌려 남은 여름빛을 안는다.

멀지 않은 곳에서 큰 새 한 마리가 참나무 숲으로 급하게 내려앉았다. 가려진 나뭇잎 사이로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숲에 들어간 큰 새가 다시 하늘로 날아간다. 비명소리 들리던 숲으로 성급히 들어가는 어미 새가 안쓰럽다. 대부분의 아픔은 잊혀지고 엷어지겠지만 그것 마다 내성이 생기는데 필요한 시간의 길이와 폭이 다른 거라고 위로해 본다.

그 어미 새도 나도 오늘은 이 강가에서 여름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여름은 끝내 강을 건너가 버렸다.

<최동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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