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나주, 드들강 솔밭 비 머금은 구름 쫙
▶ 솜 덩어리 사이 햇볕 가슴 촉촉, 한켠선‘엄마야 누나야’노래가
일기예보에 비 소식이 있었다. 창문을 여니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고, 땅은 젖어 있었다. 비 내리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보따리를 싸서 차에 싣고 드들강 솔밭으로 향했다. 이 하천은 화순군에서는 지석천이었다가 나주시의 남평읍을 지나 금천면 신가리 일대에서 영산강과 합류하며 ‘드들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솔밭이 가까워 오자 동쪽 하늘 한편에 구름이 걷히면서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비를 머금은 구름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는지 지상으로 내려왔다. 산에 논에 솜 덩어리 같은 구름이 깔렸다. 구름이 내려앉은 까닭에 동쪽 하늘에 손바닥 만한 틈이 생기더니 그곳으로 햇볕이 쏟아져 내렸다. 동녘이 환해지면서 하늘에 걸린 구름 조각에는 그늘이 드리웠다.
동편에서 날아오는 햇빛을 맞으며 습기를 머금은 솔밭으로 100m쯤 들어가니 돌로 만든 석조물이 눈에 띄었다. 일제 강점기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에 곡을 붙인 월북 작곡가 안성현의 노래비다. ‘안성현은 일본 도쿄에 있는 도호(東邦)음대를 졸업하고 귀국 후 광주사범학교·조선대 등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부용’ ‘봄바람’ 같은 명곡을 남겼다’는 내용이 노래비에 적혀 있다. 노래비가 사람의 기척을 감지했는지 센서가 작동하며 스피커에서 ‘엄마야 누나야’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사는 초등학교 때 배운 대로지만 곡조는 귀에 설어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니 내가 배운 노래는 김광수 작곡이었다. 아마도 안성현이 처음 작곡한 게 원곡인 듯싶었다.
노래가 멎기를 기다려 드들강가로 내려가 보니 노인 두 분이 강물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고기가 좀 잡히느냐”고 물었더니 “어종은 많은데 입질은 드물다”며 찌로 눈길을 돌렸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비를 뿌릴 것 같아 차에 올라타고 국립나주박물관으로 향했다. 나주에는 여러 차례 내려왔지만 박물관은 아직 가보지 못한데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아 실내 관광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 2013년 11월에 개관한 나주박물관은 5세기께 형성된 마한의 유적인 반남고분군(사적 513호)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반남고분군은 나주시 반남군 자미산을 중심으로 신촌리·대안리·덕산리의 구릉 지대에 산재한다. 고분 안에는 시신을 안치한 대형 옹관들이 매장돼 번성했던 마한의 역사를 가늠하는 단초가 됐다.
이성자 해설사는 “기원전 후 한반도에는 마한·진한·변한 등 삼한이 있었는데 그중 경기·충청·전라도 지역에 자리 잡은 마한이 가장 강한 세력을 구축했다”며 “50여개 나라들의 연맹이었던 마한은 점차 한강유역에서 성장한 백제에 주도권을 넘겨줬으나 영산강유역에서는 6세기 중엽까지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마한 고분들은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수백 기가 곳곳에 분포됐는데 박물관 주변에도 여러 기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지역 고분들의 대형 옹관에서는 마한의 최고권력자가 사용하던 것으로 보이는 금동관, 금동 신발, 봉황무늬 고리자루칼 등이 발굴됐다. 특히 신촌리 9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국보 295호)은 정교하고 완성도가 높아 당시의 문화·예술 수준이 상당한 경지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국립나주박물관 제1전시실에서는 1,200점이 넘는 실제 문화재를 만나볼 수 있으며 2전시실에서는 고분 발굴과 유물의 보존처리 과정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박물관 소장품 중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는 반출됐던 서성문 안석등(보물 364호)으로 88년 만인 2017년 5월 나주로 돌아와 박물관 중앙홀에 자리를 잡았다.
한편 나주시는 오는 10월19일부터 21일까지 ‘마한, 새로운 천년을 열다!’라는 주제로 제4회 나주마한문화축제의 막을 올린다. 이번 축제는 공식행사인 천년나주 마한 행렬을 시작으로 6개 부문 50여개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마한시대의 춤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2018 마한 춤 경연대회’는 총상금 1,100만원을 놓고 벌이는 전국단위 춤 경연대회로 일반부와 청소년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또 읍면동 대항 ‘마한 씨름대회’에서는 여자 천하장사 선발 등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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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나주)=우현석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