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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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 정상에 섰다 세상의 바람이란 바람은 온통 내게 달려들었다

2018-09-21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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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종주기 <하> 천지사방엔 나 혼자뿐이고, 셔터를 못 누를 정도로 열손가락이 얼어붙어 왔다

▶ 하산길은 온통 어둠에 덮였다, 겨우 깊이 잠든 마을에 도착해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천왕봉 정상에 섰다 세상의 바람이란 바람은 온통 내게 달려들었다

지리산 천왕봉 정상비.

천왕봉 정상에 섰다 세상의 바람이란 바람은 온통 내게 달려들었다

지리산 천왕봉 정상부.


천왕봉 정상에 섰다 세상의 바람이란 바람은 온통 내게 달려들었다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아, 이제 정상이구나. 그러나 다가가 보니,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 안내’라는 제하의 홍보판이다. 여기서 부터는 가드레일이 길 양쪽에 다 가설되어 있다. 길이 위태로와서 일까. 거친 돌들을 밟으며 왼쪽으로 굽어지는 길을 오른다. 다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다시 올라가는 길이다. 이 오름길의 꼭지에 올라서니 또 내려가는 길이 되어 아쉬운데, 머지않은 그 너머 저 끝으로 봉긋한 돌출봉의 형태가 희미하게 보인다. ‘저것이야 말로 정상이구나’ 싶다.

마지막 정상 봉우리 앞에 선다. 오르는 길이 좌우로 나뉜다. 오른쪽이 경사가 좀 급하나 거리는 좀 짧을 듯하여 그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중간에 발에 밟히는 넓은 바위면에 이리저리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들 자기 이름을 이곳에 새긴 사람들의 심정을 나름대로 어림해 본다. 찰나에 머무는 우리네 인생살이, 큰맘 먹고 힘들여 이곳 하늘세계의 성소에 오른 감회를, 만수를 누려낼 이 너럭바위에 이름을 새겨넣음으로써, 영세불망의 존재로 승화되고픈, 한 점 초로같은 유한존재의 애절한 희원이었을 것이다.

정상에 섰다(15:48; 27.2km; 1915m)


정상이란 이런 곳인가. 천왕봉 주위의 바람이란 바람은 모두 나에게 몰려들어 내 몸을 어딘가로 날려버리려나 보다. 나를 정녕 하늘 세계로 밀어 올려 하늘사람으로 만들어 주려는 축복인가! 죄많은 이 몸이 이 곳을 더럽힌 죄를 물어 깊은 나락으로 날려버리려는 응징인가! 두려운 마음이 덜컥 일어난다. 난 아무래도 축복 아닌 응징의 과보가 합당한 존재겠다.

갑작스럽게 몸이 얼어들고 손이 곱아진다. 응징의 시작인가. 카메라의 셔터를 못 누르겠다. 가외의 노력을 기울여 정상에 서있는 석비의 사진을 찍는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 새겨져 있다. 정상이 분명하다. 허나 ‘천상천하유아독존(‘귀할 존’ 아닌 ‘있을 존’으로)’이랄까, 어렵게 오른 이곳에서 내 모습이 담기는 증명사진을 찍어줄 사람은 천지사방 어디에도 없다. 모든 등산에서의 가히 화룡점정이랄 수 있을 ‘정상에서의 전망’도 없다. 좁은 정상이지만 그 전체의 윤곽도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른쪽에 제법 큰 안내판이 바위에 박혀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역사의 현장에서!’ 라는 제하에 이 산의 전경일 사진이 있고 글이 있다. 한글과 영어가 병기된 글이다. 당연히 느긋한 마음으로 이를 읽으며 하늘세계에 오른 성취를 즐겨야 겠으나, 지금은 그럴 수 없다. 몸 전체가 얼어들고 숨 쉬기도 쉽지 않다. 손가락이 마비된다. 온 몸이 아파온다. ‘삼계개고아당피지’ - 다만 ‘탈출해야 한다’는 공포가 엄습한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한줄기 감회를 새겨볼 어줍잖은 정취나 풍류도 없이, 서둘러 정상점으로 부터 10여m 아래의 바람이 가려지는 곳에 몸을 감춘다. 마비된 열 손가락을 좌우 양손을 써서 교대로 비벼댄다. 과연 풀리려나 불안하다. 한참만에 풀린다. 바람이 구름이 매섭게 나를 다그쳤지만, 그래도 한바탕의 뇌성벽력만은 묶어 주신 천지신명에 경의를 드리고, 다시 되살아나 주는 내 몸에 고마움을 느낀다.

천왕봉 밑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조금 따라가니 이정판이 있다. 중산리 5.6km, 대원사 11.8km라는 이정이 적혀 있다. ‘몸’은 당연히 중산리 행을 요구한다. 그러나, ‘마음’은 ‘화대종주’라야 제대로의 종주라던 분들의 말을 떨치지 못한다. ‘11.8km라면 7마일 남짓이니 3시간이면 충분하고, 그것도 하산길이니 서두르면 2시간도 가능하다’는 ‘머리’의 판단이다. ‘마음’은 물론 ‘몸’도 ‘머리’의 이성적 권위에 굴복한다.

그러나 머잖아 ‘머리’가 간과했던 사정이 드러난다. 하산길에는 수많은 철사다리나 철교가 있었다. 하산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봉우리들은 거의가 다 안부의 바닥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야 하는 톱날 모양의 경로이다. 그만그만한 봉우리가 많기도 하다. 하산길이라지만 시간이나 체력의 소모가 예상을 초과한다. 해가 기우는 기색이 완연하다.

주위가 완전히 어둠에 잠길 즈음에 ‘치밭목 대피소’가 나타난다(18:00;1425m;31.2km). 인적이라고는 아예 없는 악천후의 깊은 산 어둠에서 인간의 처소를 만난다는 것의 반가움은 실로 크다. 전설따라 삼천리의 “아, 그런데 그 때 저멀리 불빛 하나가 희미하게 보이는게 아닌가!”의 경지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불빛은 없었다. 반갑기는 했으나 갈길을 가는게 급선무라 생각하고 등산길을 가늠해 본다. 오른쪽으로 바짝 꺾여 계곡의 아래로 급하게 내려가는 산길이 보인다.


사위는 이미 어둠에 잠겼다. 야간에 전혀 모르는 길을 앞에 놓고 그냥 덥썩 그리로 내려간다는게 망서려진다. 아는 길도 물어가랬는데, 이 길은 아는 길이 아니다. 인기척이 없으나 문을 두드려본다. 이윽고 중년의 남자가 문을 연다. 대원사로의 하산 길을 묻는다. 응답은 주지않고 음식은 있느냐 되묻는다. 초코파이가 몇개 남았기로, 있다고 답한다. 종이컵에 탄 뜨거운 커피를 과자 몇개와 함께 건네준다. 몸이 많이 풀린다.

두가지 약속을 하란다. 우리는 여기서 결코 서로 만난 일이 없는 것으로 치부해야 한다는 것과 대원사로 가지 않고 새재마을로 간다는 것이란다. 대원사와 새재마을의 거리 차이는 3km가 된단다. 낯설고 깊은 산에서의 밤길 3km는 생과 사를 갈라 놓을수도 있다. 새재마을로 가는 길과 거기에서 어떻게 택시를 부르는가 등을 상세히 알려준다. 첫번째 다짐은 아마도 이 분의 직무규정과 맞닥뜨린 현실과의 갈등에 관한 것인 듯 하고, 두번째 다짐은 물론 나의 안전을 위한, 이곳 사정에 정통한 이 산의 전문 지킴이이면서 등산객들의 수호자로서의 따뜻한 배려일 것이다.

‘치밭목’이란, 이곳에 예전부터 우리가 취나물로 조리하여 먹는 ‘취가 많이 자라는 곳’이란 의미로 부르는 순수한 우리말이라 한다. 이곳 지리산은, 많은 곳의 땅이름을 이 지역 산골사람들이 예전부터 부르던 이름을 그대로 잘 살려 부르고 있는 아주 모범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급하다. 때로는 개천을 건너고 때로는 큰 바위 지역을 지나게 되니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분명하지 않은 구간이 더러 나온다. 헤드램프를 이리 저리 비춰가며 신중을 기하지만 길을 잘못들어 되돌아 나오는 일도 있었다. 흙이나 나무뿌리, 바위에 물끼가 많아, 트레킹폴이 없다보니 미끌어지고 넘어진다.

갈림길에 도착했다(19:10; 33.0km). 치밭목에서 부터의 하산길 1.8km는 결코 쉽지 않았다. 여기서 직진하면 대원사에 이르게 될 것이다. 새재마을은 왼쪽으로 꺾인 길로 간다. ‘화대종주’에 집착되어 다소 갈등을 느꼈으나, 산장 지킴이의 다짐도 무게가 컷고, 또 내 자신의 사기도 많이 위축되어 있다. 밤길 3km의 잇점을 외면할 수 없다. ‘화대종주’ 아닌 ‘화새종주’의 길을 택한다.

이제 겨우 3km가 남았을 새재마을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등산을 하다보면 항상 하산길이 지루하다. 낮에는 조금이라도 시야가 있었다. 지금은 조그만 헤드램프의 옅은 빛이 진한 어둠을 겨우 밀어내며 만들어가는 아주 작은 빛의 공간속을 걷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마을에 도착한다(20:05; 36.0km). 새재마을일 마을어귀에 헤드램프의 불빛에 드러나는 이정표 하나가 비스듬히 서있다. ‘치밭목 대피소 4.8km, 천왕봉 8.8km’라는 이정이 적혀있다. ‘아, 나에게는 이곳이 산행의 종점이지만, 또 다른 어떤 이에겐 이곳이 산행의 시작점이 되는구나’ 고 깨닫는다. 고요하기만 하다. 산간의 마을은 이렇게 일찍 깊은 잠에 빠지는구나. 10여호의 집들에 불이 다 꺼져 있다. 어느 집에 가서 택시를 불러달라는 부탁을 하나 난감해진다.

후기

깜깜한 이 윗새재마을의 어느 집을 깨워 택시를 불러 달라고 부탁을 드려, 진주로 나가서 가까스로 저녁을 사먹고, 여관에서 젖은 몸과 소지품들을 말리며 편안하게 휴식을 취한다. 아, 한칸 따뜻한 방이 주는 도시의 아늑함이라니!

우리 민족의 현대사에 크게 점철된 ‘태백산맥’, ‘남부군’, ‘빨치산’의 비극을 떠올리며, 이 산의 여기저기에서, 불과 60여년전이라는 가까운 과거에, 비참하게 숨져갔을 그 수많은 영령들에게 경의와 위로를 바치는 후손된 자로서의 순례의 마음을 몇번인가 되새기며 산행을 했다.

지녔던 식품으로는, 구례의 좌판 여인이 담아준 감 3개, 화엄사의 한 보살이 건네준 감 1개, 노고단대피소에서 구입한 초코파이 12개가 전부였는데, 그래도 초코파이 2개가 남았기로, 이 또한 내 작은 여정의 ‘5병2어’가 이 아닐 것인가고 고소를 머금는다.

다시 한번 지리산 종주를 하고 싶다. 이번 종주에선 민족의 영산 지리산이 품고있을 첩첩한 산줄기나 숱한 암봉, 숲과 바위들의 비경을 전혀 접하지 못했다. ‘지리산종주’라기 보다는 오로지 ‘지리산 주능선의 구름터널 관통’이 더 적합한 표현이다. 언젠가 제대로 된 ‘화대종주’를 해야겠다. 정상비의 사진도 뒷면만을 찍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정상비의 앞면에 있는 “천왕봉”이라는 새김을 다시 가서 보아야 겠다.

모를 일이다. 천왕봉에서 발원한다는 한국인의 원초적 기상에, 우리네 모든 등산인들의 지극한 발원이 이에서 보태어지면, 남으로는 한라, 북으로는 백두까지, 겨레의 홍익정기 도도히 넘실대고, 통일과 번영의 꽃 무궁화 삼천리 방방곡곡 무리무리 피어날런지. <끝>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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