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 라는 감정

2018-09-04 (화)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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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라는 감정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그 동안 운전을 하지 않고 ‘장롱 면허’였던 지인이 최근 한국에서 차를 사고 운전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몇 개월 운전해 보니 “나보다 느리게 운전하는 사람은 전부 멍청이고, 나보다 빠르게 운전하는 사람은 전부 미친 놈이다” 라는 말에 부끄럽지만 공감한다고 했다.

선비 같은 스타일로 조용 조용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하는 그가 씨익 웃으며 “그 말에 공감해” 하는데, 평소와 대조적인 그의 모습에 한번 웃고, 나 역시 부끄럽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어 박장대소 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 출근길에 앞에서 아장아장 가는 차를 보면 답답해서 속이 터질 지경이다. 방향 지시등도 켜지 않고 소위 “칼치기”하며 달려가는 차를 보면 ‘저러다 경찰한테 잡혀버리지’ 하게 된다.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강도는 다르지만 어쨌든 심리적, 언어적 저주를 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모든 판단과 평가의 기준은 ‘나’라는 것이다.


나처럼 하지 않으면 틀린 것이고, 내가 법이나 규칙을 조금 어기는 것은 유연한 것이며, 나에게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고, 나의 일이 이만큼 중요한 일인데 라고 보통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내 뜻에서 벗어난 모든 것에 ‘화’가 나기 시작한다.

분노의 대상은 불특정 다수일 수도 있고, 특정 소수일 수도 있고, 때로 최악의 경우는 자기 자신이 되기도 한다. 자신에게 화를 낸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엄격함 그래서 고매한 인격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대한 조절할 수 없는 분노야 말로 건강하지 않은 정신 상태의 출발점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무조건 화를 누르고 살려고 생각하니, 이건 또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것 같고, 그냥 도 닦는 수행의 길을 걸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찌되었건 내 감정에 솔직하고 이를 적절한 방식으로 표출할 길을 찾아야 그게 건강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마음이 갈팡질팡이다.

심지어 개인이 아닌 민족과 신을 위한 분노라고 해도 성경에 나온 모세의 화는 신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 그 말은 또 모세 같은 훌륭한 사람도 어찌되었건 분노조절은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요즘 평소보다 화날 일이 자주 생기고 있다. 더 정확히는 화가 자주 나는 것 같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꿈속에서 친한 친구에게 뭔 화가 그리도 났는지…아침에 눈뜨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이런 내게 지인의 운전 이야기는 분노의 감정 뒤에 숨어있는 ‘자아(ego)’와 그 표현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

수행의 길과 인간의 길 그 어디 중간쯤에서 방황하는 이가 나 한 사람만은 아닐 터. 누구든 오늘 화가 치미는 일이 있었다면, 우리 모두 그 중간 언저리를 배회하고 있는 가보다 생각하며 화를 다스리길 바란다.

어차피 나보다 화 안내면 지나치게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고, 나보다 더 화를 내면 분노조절장애가 아니던가.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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