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18-08-24 (금) 12:00:00 김미혜(한울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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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처음 사랑에 빠졌던 순간을 되돌아보게 되는 영화를 보았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언제 봐도 가슴 뛰고 설레는 일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결혼에 골인한다. 하지만 살다 보면 내 옆에 있는 배우자가 완전히 딴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그때 옛 추억을 되살리게 되는 영화, 옛 사진이나 편지가 등장하면 잠시 멈칫하게 된다. ‘우리가 정말 이렇게 사랑했었나’ 기분이 묘~해지게 마련이다.

이런 매개체를 자주 써먹을 순 없지만, 아이들과 좀 공유하는 것도 유익하다는 것을 경험한다.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가 가장 뜨겁게 사랑하는 장면을 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참 인생이 얄궂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부모가 주는 최고의 선물인데 말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 가슴을 끙끙 앓던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수줍게 건넨 쪽지, 영화에서처럼 펜 하나를 핑계 삼아 만날 기회를 찾던 경험, 잊은 듯 살지만 사실 추억하려 들면 하나씩 자꾸만 불러들일 수 있는 추억들의 동창회… ‘아 그때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살까?’ 그런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비와 관련된 기억들도 말이다. 나는 비를 좋아한다. 커피 한잔을 내려서 창가에 자리잡고 빗소리를 가깝게 들으면서 책을 읽는 것도 즐긴다. 그러다 내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글귀라도 만난다면 그 즐거움은 배가 된다. 아이 이름에 글자 비를 넣은 것도 비를 좋아하는 마음에서다. 그런데 이런 나도 비가 원망스러운 적이 있었다. 첫아이만 학교에 다닐 때 비가 쏟아지면 나는 막내가 탄 유모차를 밀며 두 아이에게 우산을 씌우며 걸어가야 했다. 그게 얼마나 힘들던지 제발 등하교 시에는 비가 오지 말라고 기도하기도 했다.

이제는 아이들이 모두 학생이 되고 자기 우산쯤은 혼자 들고 갈 수 있는 나이다. 어느 날 세 아이를 보내고 학교 앞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 옛날의 내 모습을 그대로 연출하는 한 엄마를 보았다. 그때의 나처럼 큰애 겨우 학교 가고 한 명은 유모차에 또 한 명은 다른 손에 붙잡고 서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이해가 되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유독 내 시간만 멈춘 듯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았는데 돌아보니 그 또한 지나가더라. 이제는 안다. 엄마는 엄마의 속도로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김미혜(한울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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