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타운 상권의 ‘효자’ 베트남 고객

2018-08-24 (금) 문태기 부국장·OC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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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그로브 한인타운 상권이 죽어간다는 얘기를 종종 들어왔다. 풀러튼, 부에나 팍, 어바인 한인 상권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한인들로 북적거렸던 예전의 타운 모습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일부 한인업소들은 다른 곳으로 이미 옮겨갔다. 또 타운에 있던 건물 자체를 아예 팔아치운 업체도 있다. 한인고객이 점점 줄고 있는 타운에 더 이상 매장이나 오피스를 둘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이 가속화되어 타운의 한인업소들은 점점 더 장사하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었다.

그러나 최근 몇년사이 한류 열풍을 타고 베트남 고객들이 타운으로 몰려들면서 한인업소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풀러튼, 부에나팍, 어바인 지역에 빼앗긴 한인 고객들의 빈자리를 베트남 고객들이 메우고 있다.


특히 오렌지카운티 대표적 한인마켓인 ‘아리랑 마켓’과 ‘H-마트’가 입주해 있는 샤핑몰에는 베트남 고객들이 더해지면서 평일에도 주차공간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붐비고 있다. 마켓 주차장에는 베트남어 대화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한인마켓에서 베트남 캐시어들도 낯설지 않다. 또 마켓 내 정육 코너 앞에서 베트남 고객들이 갈비, 소고기, 돼지고기를 주문하기 위해서 줄 서 기다리는 풍경은 흔한 일이 됐다.

이 같이 한인 마켓에 베트남 고객이 증가한 것은 타운 주위에 거주하는 베트남계 주민이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 주 요인이다. 리틀 사이공에 있는 베트남 마켓을 굳이 가지 않아도 일반적인 그로서리는 가까운 한인마켓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한인마켓은 ‘갈비가 맛있고 야채와 과일이 싸고 싱싱하다’는 인식과 한국 드라마를 통해서 한인들에 대한 이미지가 좋은 것도 베트남 고객들이 타운 마켓을 찾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물론 베트남 커뮤니티에 마켓 광고를 하고 있는 것도 고객들을 끌어들이는데 한몫을 했을 것이다.

이 몰에 입주해 있는 순두부 전문식당을 비롯한 한식, 중식, 제과점, 건강 식품점, 의류, 화장품 가게 등에서도 베트남 고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일부 한인업소는 베트남어로 된 제품 설명서 또는 홍보물을 걸어놓고 있고, 베트남 직원들도 고용하고 있다.

이와 아울러 타운의 바비큐 전문 한식당들에는 저녁이면 젊은 베트남 고객이 한인보다 훨씬 많다. 대표적 한식당 중 하나로 저녁에는 ‘올 유 캔 잇’ 바비큐를 제공하는 G 식당의 경우 디너 고객의 80-90%가량이 타민족이고 이 중에서 절반이 베트남 젊은 층이라고 한다.

심지어 타운 내 치과 사무실에도 베트남 고객들이 늘고 있다. 한류의 영향으로 한인치과 전문의들은 의술이 뛰어나고 신뢰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한인 치과 전문의에 따르면 베트남 환자가 한인들과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어 진료에도 별 어려움이 없다.


부동산 업계도 마찬가지이다. 가든그로브의 한인 에이전트가 주택 리스팅을 가지고 있으면 베트남 바이어들이 달려드는 형국이다. 가든그로브로 들어오려는 베트남 주민들이 많기 때문에 이를 잘 마케팅하면 한인 부동산업계 활성화에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리틀 사이공’은 이미 포화상태에 달해 바로 옆 가든그로브 한인타운으로 몰려오고 있는 셈이다.

타운의 한인은행들은 아직까지 베트남계 텔러를 채용해야 할 정도로 베트남 고객들이 많지 않지만 어카운트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은행 관계자들에 따르면 베트남 커뮤니티에 집중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지 않아도 ‘알음알음’으로 베트남 고객들이 한인은행을 찾고 있다.

현재의 가든그로브 한인타운은 베트남 고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더 이상 한인 고객만을 위한 마케팅은 효과적이라고 볼 수 없다. 기존 한인고객들을 기반으로 베트남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전략이 통하는 날이 이미 찾아왔다. 한인 업주와 베트남 고객과의 공생 관계는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태기 부국장·OC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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