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한인들이 거주하는 남가주를 비롯해 네바다주, 애리조나주, 뉴멕시코주를 관할하는 주 로스앤젤레스 대한민국 총영사관(이하 LA 총영사관)은 한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인 1948년 11월21일 설립됐다.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를 공식 승인한 것이 1949년 1월1일이었고, 이후 워싱턴 DC에 주미 한국대사관이 문을 열었으니, LA 총영사관은 정부 수립 이후 미국에 설치된 첫번째 재외공관인 셈이다.
아직 제대로된 한인타운이 형성되기도 전 한국 정부가 첫 재외공관을 LA에 세운 것은 이 지역이 갖고 있는 역사적 상징성 때문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LA는 이민 선조들의 독립운동 중심지로서 도산 안창호 선생 등 많은 애국지사들이 활발히 활동한 터전이었다.
총영사관 설립 당시 1,000여명에 불과하던 남가주 한인사회는 이제 70여만명 규모로 성장했다. 이같은 한인사회의 위상에 걸맞게 LA 총영사관은 전세계 187개 재외공관 중 10위권에 들 정도로 큰 규모다. 다른 지역에 없는 LA 한국문화원과 LA 한국교육원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은 정부다.
설립 이후 76년의 세월 동안 초대 고 민희식 총영사를 시작으로 김영완 현 총영사까지 모두 24명의 총영사가 남가주 한인사회와 기쁨과 슬픔을 함께 했다. 일부 총영사들은 재임기간 중 남가주 한국학원 등과 같은 이슈를 둘러싸고 한인사회와 긴장관계를 형성했다. 몇몇 총영사들은 특별한 현안이 없었음에도 개인적 성향 때문에 한인사회와 불필요한 충돌을 빚기도 했다.
어떤 총영사는 지나치게 자주 관저에서 만찬행사를 열어 ‘만찬’ 총영사냐는 비난을 받았고, 너무 한국 정부 눈치만 본다고 ‘눈총’을 받은 총영사도 있다,
지난 2022년 3월 부임한 김영완 총영사는 3년여 임기의 반환점을 훌쩍 넘겼다. 김영완 총영사 부임 이후 LA 총영사관은 하루 한번 꼴로 ‘역대급’ 보도자료를 쏟아 내고 있다. 한주에 한번 정도는 총영사 사진이 큼지막하게 들어간 동정과 관련된 보도자료가 나온다.
사전에 언론에 일정이 공개된 동정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방적인 사후 보도자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김영완 총영사에게는 ‘사진’ 총영사라는 달갑지 않은 별칭이 붙었다.
“총영사의 얼굴은 (사진상으로) 어디에도 보이지만 실제로 (현장에는) 어디에도 없다”는 한인 단체 관계자들의 볼멘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려 온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LA에 거주하는 중국 동포들이 설날 행사를 준비하면서 총영사와 동포담당 영사를 초정했는데 “태극기가 걸리지 않는 행사에는 총영사관의 참여가 힘들다”는 옹색한 답변을 들었단다.
만일 중국 국적의 중국 동포가 총영사관의 접촉 대상이 아니라면 입양 한인이나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는 한인들 역시 총영사관이 굳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중가주 리들리에서 LA 한인회와 독립운동 유관단체들이 합동으로 주최하는 105주년 3.1절 기념행사를 놓고도 LA 총영사관이 관할 지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참여를 주저했다고 한다. 리들리가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관할 지역에 속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미주 한인 독립운동사에서 LA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리들리 행사 참석에 영사관측이 난색을 표했다면 속좁은 판단이다.
한인 언론사 기자들 사이에서는 김영완 총영사의 지나친 ‘정중동’ 행보 탓인지 영사들의 대외 접촉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취재를 목적으로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영사들에게 문의할라치면 자신의 담당이 아니라며 이리저리 돌리기 일쑤다. 이러다 ‘사진’ 총영사에 더해 ‘뺑뺑이’ 총영사관이라는 반갑지 않은 별칭이 굳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역대 총영사 중에서 최고의 인물로 평가되는 사람은 1968년부터 1972년까지 4대 총영사로 재직했던 고 노신영 총리다. 38세의 젊은 나이에 LA에 부임한 노신영 총영사는 당시 막 형성되기 시작했던 남가주 한인사회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노 총영사의 가장 큰 장점은 탁월한 소통 능력이었다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4년간의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외무부 장관과 국가안전기획부장을 거쳐 국무총리직을 끝으로 32년 간의 공직생활을 명예롭게 마감했다.
이처럼 한 조직의 리더로서 가장 큰 덕목 중 하나는 소통이다. 소통 능력이 뛰어났던 총영사들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불통의 리더십을 보였던 총영사들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야박하다.
김영완 총영사는 지난 2022년 6월 부임 100일 맞아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동포사회가 크게 성장했고 주류사회에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한편으로는 우리 총영사관이 무엇을 더 도울 수 있을까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고 밝힌바 있다.
부디 김영완 총영사가 초심을 잊지 말고, 한인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했던 총영사로 평가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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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