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야동’은 성범죄물이다

2018-08-06 (월) 김성준 / 콜로라도 대 정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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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국의 한 TV방송이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산업의 실태를 다뤘다. 디지털 성범죄물이란 당사자의 동의 없이 촬영되거나 유포되는 알몸 사진이나 성관계 영상을 뜻한다. ‘몰카’나 ‘리벤지 포르노’ ‘국산 야동’ 으로 불리는 사진이나 동영상들이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이런 영상들은 미주한인사회와 한인유학생 사회에서도 웹하드나 토렌트, P2P 등의 경로를 통해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대충 내용을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방송된 내용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한국의 웹하드 업체들이 디지털 성범죄 영상의 유통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데 앞장 서왔다는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방송에 따르면 웹하드 업체들은 관련 영상의 유통을 단순히 방조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전문적으로 불법 동영상을 올리는 전문 업로더들과 파트너 관계를 맺고 영상물의 광범위한 유통을 조장하고 부추기고 있었다. 소위 ‘잘 나가는’ 헤비 업로더 한 명이 일 년에 3-4억 원을 벌었다고 하니, 이 음성적인 디지털 성범죄 유통산업의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도 되지 않는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불법촬영 피해자들에게서 돈을 받고 영상을 삭제해주는, 이른바 ‘디지털 장의사’ 회사들조차 웹하드 업체가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웹하드 업체들은 불법 촬영물을 지워달라고 찾아온 피해자들의 눈물을 그저 또 다른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긴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산업의 규모와 심각성이 드러난 만큼, 한국에서는 조만간 관련 촬영과 유포는 물론 소지까지도 처벌할 수 있는 법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미주 한인 사회와 유학생 사회의 남성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당신은 단순히 호기심이나 욕구해소를 위해서 ‘야동’을 보는 게 뭐가 나쁘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주변의 다른 남자들도 별 죄책감 없이 ‘(한)국산 야동’을 돌려보는데 나 하나쯤 더 한다고 어떻겠느냐고 변명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그렇게 키워진 수요가 저 거대한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산업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 거리낌 없이 그 영상들을 재생해보기 전에 피해자의 심정을 헤아렸으면 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알몸이나 성관계 장면이 공개된다는 건 누구에게나 끔찍한 악몽이다. 피해자들은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평범한 일반인일 뿐이다. 그들은 그저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은밀한 시간을 보냈을 뿐이거나 공중 화장실을 한번 이용했을 뿐이다.

디지털 성범죄물은 일단 인터넷에 올라가면 삽시간에 퍼져나가고, 당사자도 모르는 사이에 어디선가에서 계속 공유된다. 심지어 피해자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더라도 ‘유작’이라는 표제 하에 영상이 떠돌아다니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한)국산 야동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부분 명백한 피해자가 있는 디지털 성범죄 영상이다. 그 영상을 볼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피해 여성들이 불특정 다수에게 알몸이나 성관계 영상을 보여줄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보지 않으면, 그걸로 돈을 벌 사람도 없어질 테고, 따라서 피해자들의 끔찍한 악몽 역시 끝날 수 있다. 제발 더 이상은 보지도 공유하지도 말자.

<김성준 / 콜로라도 대 정치학 박사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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