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흐르는 강물처럼

2018-07-31 (화) 12:00:00 이수연(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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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 차로 꽤나 터울 있는 언니와 나는 머리가 조금 커지던 사춘기 때부터 심심치 않게 싸우곤 했다. 싸움 빈도수는 어릴 적보다 잦아들었지만, 성인이 된 후 싸움은 그 정도가 심해져 골이 깊어졌다. 언니와 나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내가 느긋한 삶을 지향한다면 언니는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추진적인 삶을 추구한다. 예전에는 미미했던 서로의 차이가 내가 유학길에 오르고 오래 떨어져 지낸 후부터는 그 차이가 너무도 벌어져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도 서로 떨어져 지내 각자의 개성이 짙어진 노먼과 폴이라는 형제의 이야기를 다룬다. 유년 시절부터 우애 좋던 형제는 꽤 다른 성격을 가졌다. 엄격한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형인 노먼은 아버지의 교육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온순한 아이라면, 폴은 아버지의 규칙을 깨거나 불응하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비친다.

도시에서 안정적으로 학업을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노먼에게 술과 노름을 일삼는 폴은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서로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고 느껴질 때마다 형제 사이는 더욱 멀어진다. 결국, 위태로운 삶을 살던 폴은 도박으로 인해 불어난 빚으로 사고를 당해 죽게 된다. 그리고 폴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폴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외면한 아버지가 회한의 추모사를 낭송한다. “완전한 이해 없이도 우리는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해하려는 동시에 자기 삶의 방식으로 폴을 회유하려 하기도 했던 노먼은 이해하려는데 시간을 허비해 사랑하는 폴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화는 흐르는 강물을 움켜쥐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강물을 눈에 담는 것처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또한 억지로 구태여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대로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 또한 억지스러운 것이며 갈등을 해소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냥 사랑하는 사람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폴의 아버지나 노먼과 같이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이제는 이해 없이 온전히 사랑하는 그 방법을 터득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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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씨는 UC버클리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미디어 학과를 전공, 정치경제를 부전공하고 있다. 미디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세상사를 읽고 들으며 경험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수연(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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