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냥 살았으면…

2018-07-30 (월)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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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살았으면…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언제부터였는지 사회적으로 굵직굵직한 일이 터질 때마다 흔히 말하는 주요 인물들이 자살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문제나 우울증에서 기인이 되었건,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의 중심에 선 때문이건 누군가를 그런 식으로 떠나보낸다는 것은 남아있는 가족에게는 물론 커뮤니티에도 큰 상처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상처에 대처하는 개인과 사회의 방식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항상 남아있는 사람들은 또 각기 다른 대처 방식 앞에서 논쟁을 벌이고는 한다.

누군가가 “이건 정말 아니다”라고 페이스북에 쓴 것을 보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누군가가 “또” 자살을 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바로 한국뉴스를 찾아보니, 정치인 노회찬 씨였다.


사실 사건마다 다르고 개인마다 달라 모두 비슷한 현상으로 묶어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제는 정말 이런 자살들 그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여기서 “이런”은 사람마다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어서 매우 조심스럽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이런 자살”은 그냥 “모든 사람들의” 자살을 의미한다.

자살은 그게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위한 것이라 해도 아프고 슬픈 일이다. 잘못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남아서 규명하고 벌 받고 그러면 될 거 아닌가? 살다보면 상황이 나아질 수도 있고, 세상이 변할 수도 있는데, 어쨌든 그렇게 떠나면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좀 버텨주지. 차라리 어떤 형태의 도움이라도 요청하지 등등. 이 원망은 지금 막 떠난 정치인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모든(내가 좋아하던 좋아하지 않던, 죄가 있던 없던) 자살한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생각이었고, 처음 이 글을 시작한 동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조문 가서 오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미디어에서 보며 나는 몇 배로 더 슬퍼졌다. 문득 그렇게 떠난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내가 어떻게 감히 가늠할 수 있을까 싶어졌고, 그들의 삶, 그들의 노력, 그들의 희망, 그들의 절망에 대해 내가 뭘 알까 생각하니 ‘좀 버티지…. 왜 그렇게 떠나’ 라는 생각조차 적절치 않은 것인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냥, 살아 있는 사람은 다들 자살하지 말고 살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되었다. 이미 그렇게 떠난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아닌, 그냥 모두에게 그런 상황들이 애초부터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극적인 바람으로 남게 되었다.

동기가 정의이던 사익이던, 알려지면 문제될 유혹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실수를 이미 했다면 그냥 살아서 규명하고, 벌 받고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어떤 개인의 삶도 그렇게 고통스럽고 모진 무게를 감당해야 할 만큼 세상이 힘들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누구도 못 이룬 바람을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하고 앉아있는 슬픈 날들이다.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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