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재택근무 3년 차

2018-07-16 (월) 김장원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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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 3년 차

김장원 공학박사

나는 헬스케어 분야 인공지능 스타트업 회사의 연구원이다. 회사는 유타에 있고, 나는 로스앤젤레스에 산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모두 재택근무로 일한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도 재택근무를 했다. 2018년은 나에게 재택근무 3년 차의 해이다.

나와 내 가족에게 재택근무는 큰 혜택이다. 우리는 맞벌이 부부인데, 아내가 전 세계 어디에서 직장을 잡든 그곳에서 함께 살면서 내 분야의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내 시간을 꽤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아침에 컨디션이 안 좋으면 오전에 쉬고 오후와 저녁에 일을 한다거나, 지역에 상관없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가서 함께 식사를 한다거나, 카페에서 바닷가를 바라보며 프로그래밍을 하는 등 큰 자유를 누린다.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긴 것도 큰 장점이다. 출퇴근 시간을 아끼고, 사람들과 불필요한 수다/잡담을 하는 시간도 거의 없다. 온라인 미팅도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 끝낸다. 그래서 자기계발을 할 시간과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


나름대로 사무실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집 작은 방 한켠에서 대부분의 회사 일을 한다. 가끔 조용한 커피숍이나 학교 도서관에 가기도 하는데, 보통은 집에서 일할 때 효율이 가장 좋다. 학생 때부터 사용하던 오래된 책상은 최근 서서 일하는 책상으로 바꿨다. 아무래도 앉아서 오래 일하다 보니 거북목과 척추측만증이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집 뒤편 덱에서 커피 한잔 받아놓고 마당을 보며 일해본 적이 있는데, 옆집 개가 엄청 짖어서 실패했다. 일주일 중 하루만 재택근무 하는 지인을 만나러 가끔 카페에 가기도 한다. 아무래도 몇 주씩 하루 종일 집에만 있기는 지루하다.

나와 직접적으로 같이 일하는 회사 동료들은 전원 재택근무를 해서 그런지, 회사 문화는 상당히 자율적이다. 휴가는 쓰고 싶은 만큼 본인이 알아서 쓰고, 하루 이틀 정도는 보스에게 알리지 않고 쉰다. 기본적으로 알아서 맡은 일을 책임지고 하는 문화이다. 놀라운 점은, 그 동료들이 해내는 일의 양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재택근무를 처음 할 때는 상대적으로 내 아웃풋이 적어 보이지는 않을까 눈치를 본 적도 있다. 학교를 마치고 바로 회사생활을 하는 첫 사원이어서 다른 동료들의 아웃풋을 따라가기 조금 벅찼다. 회사에서 일하는 방식에 적응하는데도 시간이 조금 걸렸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고부터는 나만의 페이스로 마음 편히 일하려 하고 있다. 나만의 장점과 기여하는 점이 있기 마련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딸아이를 내가 챙겨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기, 집에서 아침과 저녁먹이기(둘이서 외식도 종종 한다) 등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매일 꽤 된다. 학교에서 헤어질 때 아이가 창밖으로 나에게 하트를 마구 날려주는 모습은 나의 자부심이 되었다. 가끔은 저녁에 좋은 재료로 볶음밥을 만들어서 같이 먹기도 한다. 엊그제는 아이가 “블랙 파스타”(자장면)을 먹고 싶다고 해서 LA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과 탕수육을 같이 먹으러 갔다. 이럴 때 “아빠 블랙빠스타 진짜 맛있어요” 라고 한마디 날려주면, 또 나의 자부심이 된다.

처음 재택근무를 시작할 때는, 조금 심심하긴 했다. 회사사람들과 어울리며 같이 식사하고 술도 한잔 하는 모임이 없어서 아쉬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나름 바쁘게 잘 살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게임, 컴퓨터 그래픽,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영화 디렉터, 패션 디자이너, 데이터 과학자, 마케터 등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기기에 LA는 최적의 도시이다. 이 점을 잘 활용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어울리면서, 앞으로 최소한 1~2년은 더 재밌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김장원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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