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평양을 향한 꿈

2018-06-25 (월) 양지승 매릴랜드 대 교육학 교수
작게 크게
평양을 향한 꿈

양지승 매릴랜드 대 교육학 교수

무슨 쪽대본 드라마를 촬영하는 것처럼 하루하루 분위기가 전환되더니 결국 지난 12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자리에 만나 악수하는 역사적인 장면이 전 세계에 방영되었다. 만난 당사자들만큼이나 보는 우리들도 어색했지만, 바람직한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당시 나는 한국 방문 중이었고, 그날따라 서울 여기저기에서 일들이 많아 택시를 3번이나 탔는데, 세 명의 택시기사들 모두 라디오 생방송으로 북미 정상회담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열심히 듣고 있었다.

지난 4월 판문점 회담이 있었을 때, 한국에서 학원강사를 하는 친구가 페이스 북에 글을 올렸다. 오랫동안 꿈을 꾸지 못했는데, 판문점 회담을 보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꿈은 평양에 학원 분원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가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판문점 남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이 누군가를 다시 꿈꾸게 할 수 있는 사건임을 깨닫고 마음이 울컥했다. 오랫동안 아니 생애 단 한번도 내게는 그런 종류의 꿈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공동성명 내용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과거를 돌이켜보며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이 이루어지던 날 밤 술자리에서는 교육관련 연구원들이나 교수들이 남북교류가 가능해지면 해야 할 과제들과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북한의 교육과정을 연구하고 어떻게 남한의 교육자원이 그 안으로 들어가야 적절할지 연구과제들이 주어질 것이며, 다른 과목들에 비해 영어 교육 관련 연구가 특히 필요할 것이고, 코딩 교육은 이미 북한이 훌륭한 편이라 남한 쪽 교육에 참고할 점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들이었다.

실제로 이런 연구들이 이루어지면, 김일성 종합대학의 사범대 교수들과 공동연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우선 기차가 생겨서 비행기가 아닌 육로로 오가면 할 만하지 않겠냐는 등 학원 강사인 내 친구의 꿈과 같은 꿈들이 논의되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뉴스를 보니 서울대 학생들이 이미 김일성 종합대학의 학생들과 교류하기 위해 통일부에서 허가를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역시 빠르구나” 생각하며 그런 꿈들이 가능해진 현실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앞으로가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닐 것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흐름대로 간다면, 친구가 살아생전에 평양에서 강사를 할 수 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 역시 어느 한해를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보게 되었다.

드라마 쪽 대본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차분하게 북한이라는 대상을 공부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있으면, 우리 모두 언젠가는 꿈을 이룰 수 있을 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설사 평양에서의 강사생활이나 김일성 대학교수와의 공동연구가 고된 경험이 되더라도, 지금은 꿈꿀 수 있음에 감사한다.

<양지승 매릴랜드 대 교육학 교수>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