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비전을 위한 이별

2018-06-23 (토) 12:00:00 양주옥(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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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들 내외를 보기 위해 레딩을 다녀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선교를 1년 다녀온 아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원을 그곳에서 다니다가 지난 1월 졸업을 했다. 일하면서 공부하는 것도 힘든데 오래 전부터 해보고 싶다던 비행 공부도 병행하더니 드디어 첫번째 자격증을 갖게 되었고 이젠 본격적인 비행 공부를 위해 시애틀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가기 전 아들은 자기가 조종하는 비행기를 태워주겠다고 우리 부부를 초대했다. 볼 때까지는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조종석에 앉은 아들을 보니 정말 대견하고 흐뭇했다.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잠시 후 하늘로 날아올라 드넓은 자연을 내려다보며 멋진 샤스타 산을 마주하게 되었다. 1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 결코 올라 볼 수 없는 산을 옆에서 바라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조금 지나니 어느새 오리건 주까지 가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 중 하나라는 크리에이터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아름다운 호수와 형용할 수 없는 파란 물빛은 눈을 감아도 그려질 것 같은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출발할 때의 긴장감과 달리 돌아오는 길엔 아름다운 경치보다 조종석에 앉은 아들을 보며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들은 탁 트인 하늘을 날며 멋진 미래를 그려보고, 높고 험한 곳들을 내려다보며 고된 인생길도 헤쳐 가리라 다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알고 한 걸음씩 나가고 있는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그 길이 얼마나 고된 길인지 알기에 부모로서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또 언젠가는 긴 이별을 해야 한다고 수없이 되뇌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그 순간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보니 내 마음이 더 내려앉았다.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전화를 해 주는 자상함에 속 한번 썩이지 않은 아들이어서 더 그런가 보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목이 메어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눈물을 삼키는 사이 관제탑과 뭐라 교신하던 아들은 곧 멋지게 착륙을 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아들은 피곤한 줄도 모르고 다음 비행을 기다리며 설렌단다. 그렇게 비행이 좋을까? 이제 비행 공부를 마치면 선교지로 떠나면서 더 긴 이별을 해야 한다. 아들의 비전을 이루어 가는 모습을 응원하면서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이별을 해야 할지 벌써 가슴이 아려 온다.

사랑하는 아들, 며느리야. 잘 가렴. 어느 곳이든 마음으로 함께하며 응원할게.

<양주옥(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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