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러시아 최대 석유 매장지 답게 여기저기 정유시설이

2018-06-08 (금) 권태진/변호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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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태진의 시베리아 횡단열차 기행⑧

러시아 최대 석유 매장지 답게 여기저기 정유시설이

야생화로 덮힌 시베리아 들판

1600년대 세워진 화이트 처치는 러시아정교로
여자는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머리에 두건 착용해야
이르크 소트는 온 도시가 석유저장시설로 곽 차있어
노보시비르스크는 시베리아서 가장 큰 도시

8월 12일 이르쿠츠크에서 노보시비르스크(Novosibirsk)로

아침 7시에 머물고 있는 앙카라호텔 식당으로 가니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와 같은 식탁에 앉은 두부인은 밥과 한국 반찬을 펼쳐놓고 먹고 있었다. 냄새가 많은 반찬은 피한 것 같으나 역시 반찬냄새가 풍겼다. 다음 행선지로 향하는 열차시간이 늦은 오후라 아침 산책을 하기로 했다. 전날에 갔던 호텔부근을 다시 거닐며 각종의 꽃으로 수놓은 작은 공원을 거쳐 주 청사건물 쪽으로 향했다. 청사 바로 뒤에 전날에 들어가 본 1600년대에 세워진 이 지역 최초의 교회인 화이트처치가 있다. 아침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풍경을 살펴보았다.


몇 명의 여자들이 교회에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톨릭과 같이 여성은 성전에서 머리를 가리는 러시아정교의 전통에 따라 이미 머리에 수건을 쓰고 오는 여인들도 있으며 성전 앞에서 들어가기 직전에 수건 을 쓰는 여자도 있다. 교회 들어가는 출입구 앞에 2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옷차림은 걸인 갖지 않았으나 손에 컵을 들고 구걸하고 있었다. 한 여성 성도가 걸인의 컵에 동전을 넣고 그 뒤를 따라온 다른 여자도 컵에 무엇을 넣었다. 몇 분이 지나 검은 옷을 입은 한 여인이 뛰어오고 있다. 구걸하는 사람을 보지도 않고 교회 안으로 황급히 들어간다. 모두가 아침 기도나 또는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이다.

2015년 6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여행 중 크리스천 성지 곤다르시를 방문했을 당시가 기억이 난다. 새벽기도시간에 참석하려고 현지인 교회에 간 일이 있다. 이때 교회 앞에 땅에 얼굴을 파묻고 구걸하는 사람들이 줄을 있고 있었다. 러시아 교회 앞에 걸인들은 걸인 같지 않게 옷도 재대로 입고 있었지만 에티오피아의 걸인들은 걸인 같이 남루한 옷차림은 물론이지만 얼굴을 땅에 묻고 손만 구걸하는 손만 밖으로 향했다.러시아정교에서는 의자가 없고 서서 예배를 보는 것이 특이하며 정식예배는 1시간정도이나 부활절예배는 3시간이상이라고 했다. 앙가라 강변에 낚시꾼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호텔투숙증명서를 발급하는 러시아

다음 행선지로 가기 위해 호텔방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하는데 여직원이 나를 세우고 방을 체크해봐야 한다고 한다. 방에 갔다 오더니 깨진 유리컵 값을 $10을 내야한다고 한다. 이 컵은 변소싱크대위에 놓였던 것으로 물기가 있어 미끄러져 땅에 떨어져 깨져 휴지통에 버려졌다. 가격으로는 $1불도 되지 않을 정도의 사구려 컵이다. 내가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낼 수 없다고 했으나 가격을 지불하라고 주장했다. 나의 강력한 항의에 그녀는 물러섰지만 체크아웃 데스크에서 다시 직원이 컵 값을 내어야한다고 한다. 항의가 소용없다고 판단 $10을 지불하고 호텔을 나왔다.

컵이 깨진 것을 사전에 알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물론 다른 물건이 없어졌는지 조사하다가 발견할 수도 있지만 휴지통에 버려진 것을 찾을 수 있을 정도니 투숙객의 방을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조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도 되었다. 여행 중에 더욱 의아하게 생각했던 일이 있었다. 호텔에서 나올 때는 호텔에서 발급하는 호텔체재 확인서를 받아 나와야한다. 다음 호텔에 가면 그것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버려서는 안 된다. 여러 나라 여행을 해보았지만 이러한 것은 처음 있는 경험이다. 러시아에는 아직도 공산주의 방식이 남아 있으며 서구 민주주의의 문화가 아직도 실행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밖에서 기다리던 안드레 한 교교사의 자동차로 역에 도착한 시간은 3:45분으로 4시 15분 출발까지 30분의 여유가 있었다. 열차시간표에는 모스코바시간으로 8월 12일 오전 11시 15분이지만 이르쿠츠크 현지시간이 모스코바시간보다 4시간 빨라 오후 4시 15분이 된다. 열차는 오후 4시에 도착하여 출발시간 4시 15분 까지는 15분의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이곳에서 다음목적지 노보시비르스크에 도착은 모스코바시간으로 오후 4시 04분이다. 모스코바시간은 현지시간 보다 4시간 늦기 때문에 도착 현지시간은 오후 8시 4분으로 총 29시간을 열차 안에서 계속 있어야한다. 두 번째로 긴 기간이기 때문에 1등으로 예약을 했다. 역시 여권과 열차표를 보이고 10호 열차 7번방으로 들어갔는데 동석하는 사람이 없다. 렙탑을 꺼내 창가의 테이블위에 놓고 여행기를 쓸 준비를 했다.

열차는 이르쿠츠크를 떠나 앙가라강 철교를 지난다. 출발한지 10분도 되지 않아 2분 정차한 곳은 불과 32킬로 밖에 오지 않는 Irkutsk-Sort 란 곳이다. 왜 여기에 정차하는지는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곳을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고 몇 분이 되지 않아 하늘을 치솟는 굴뚝들이 여기저기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온 도시가 석유저장시설과 파이프들로 된 시설물들이 꽉 차있다. 이르크 소트에서 17킬로 떨어진 곳 Angarst란 곳이다. 기차가 2분 정착했다. 크고 높은 굴뚝이 사방에 서있어 정유공장일 것 같이 보였으며 열차 속에서 본 내 추측이 거의 맞았다.


지역을 조사해 보니 24만의 인구가 있는 시베리아에서 가장 대규모의 산업지역이다. 앙가르스크석유화학공장단지와 앙가르스크전기분해 화학공장단지가 이곳에 있다. 그리고 열차선로에 유조화물열차가 긴 대열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러시아가 세계 산유국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많은 석유가 저장되어있는 국가로 시베리아가 석유 매장지다.

불과 2분의 정차 후 열차는 다시 움직인다. 모스코바 쪽 서쪽으로 향하면서 열차 운행의 빈도가 많아지고 화물차가 지나가는 것도 빈번하다. 출발한지 두 시간이 지나니 또 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벌판이다. 모두가 농토처럼 보이고 곡식이 무르익은 것처럼 보이지만 곡식은 없고 야생초들이다. 넓은 벌판에 살찐 소들은 맑은 공기에 물이 많고 먹을 풀이 많기 때문에 행복하게 보였다.

기온이 80도가 되어 복도에 있는 창문을 열어 놓았지만 실내가 덥지만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 앙가르스트를 떠난 지 3시간이 지나고 있는 시각 열차는 소나무로 빽빽한 야산의 계곡을 질주하고 있다. 4시간 30분 만에 250킬로 달여와 모스코바에서 4940킬로 떨어진 Zima역에 도착하여 15분간 정차다. 실내가 더워 열차에서 내려 바깥 공기를 마신다. 1등과 2등은 방이 막혀 있으나 일반석은 차량전체가 튀어있어 공기가잘 통하여 갑갑함과 더위가 적을 것이다.

저녁 9시 해가 지고 어두움이 닥쳐오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더위는 머물고 있었다. 2010년 인구조사로 32,000명이 있는 이 소도시는 낮은 평원지역으로 목재와 철로가 주산업이다. Oka 강변에 자리 잡은 이곳의 겨울온도는 영하 섭씨45도까지 내려가는 추위지만 여름에는 40도 (화씨 104)까지 올라가는 폭염인 날도 있다. 소비에트가 무너지고 그로 인한 경제위기로 인해 이 지역 인구가 15%정도 감소되었다.

8/13일 일요일

이르쿠츠크를 출발한지 14시간이 지나 Krasnoyarsk에 도착했을 때 모스코바시간 4:05분 현지시간은 이르쿠츠크보다 1시간 늦은 아침 5시다. 1백만에 가까운 인구로 시베리아의 대도시로 러시아전체의 14번째 인구가 많은 도시다. 여행 계획을 할 때 이곳에 하루를 머물까 생각했다가 시베리아 제1도시 Novosibirsk로 교체했다. 22분 정차기간동안 철로 부근 사진도 찍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스트레치를 했다. 어제 밤 만해도 더워서 더위를 이기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는데 오늘 아침 이곳의 날씨는 살살한 화씨 50도 내외로 기온의 차이가 극히 심하다.

여행 중 만난 메인 주에서 온 60대 후반의 부부는 이곳에 내려 관광을 한다고 하면서 여행을 잘 하라고 말하면서 나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이들 부부는 열차여행을 많이 해본사람들로 미 대륙횡단과 남아프리카공화국등지에서도 열차여행을 한 경험이 있다. 이번 여행은 몽고 울란바타에서 시작하여 세인트 피터스버그 까지 여정이 잡힌 부부로 몽고 울란바타에서 러시아 울란 우대에 와서 러시아횡단열차로 갈아 탄 것이다. 울란 우대 호텔에서 만나 이르쿠츠크에서 다시 만난 이들은 여행기간동안 곳곳마다 안내자가 있는 여행을 하고 있다. 러시아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All Russia아 여행사를 통하여 교통, 숙박, 관광 전체를 패케이지로 하고 있었다.

나는 온라인으로 여기저기 정보를 수집했으나 All Russia여행사가 적절한 여행사였다. 단체로 할 수도 있으나 단체로는 내가 계획한 대로 할 수 없어 개인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알아보았다. 가격이 내가 예산했던 것보다 훨씬 초과했을 뿐만이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는 여행과 차이가 있었다. 더욱이 나의 여행은 선교지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관광위주가 아니었다. 그들의 여행일정을 토대로 나름대로 일정을 짜고 열차표는 러시아의 열차를 전담하는 회사인 Russiantrain.com을 통하여 구입했다. 호텔, 관광 등 모두가 차이가 있고 안내자가 없는 것이 다르지만 All Russia를 통한 여행비용에 비하면 반 가격에도 미치지 않는다. 열차의 경우 나의 계획은 1등에서 3등까지 고루 타려고 했으며 호텔도 비교적 중간정도의 것을 택했다.

시베리아횡단열차로 여행할 경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코바까지 시간대가 7번 바뀌며 열차표시간도 모스코바시간으로 표시되어 있어 여행자들은 이점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타는 표에 오전 11:00로 기재되어 있으면 두 도시간의 시간 차이는 7시간이기 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 시간으로 저녁 6시가 된다. 낮 열차를 타려다가 잘못하면 야간열차를 타게 되는 결과가 될 수가 있다.

현지시간 오후 2:30분에 Marinsk 역에 도착 19분간 정차했다. 날은 흐렸으나 아이 폰의 온도는 61도를 가리키고 바람이 없어 상쾌하다. 프레트폼에는 구매점도 있고 먹을 것을 카트에 밀고 다니면서 파는 사람도 있다. 카트에서 닭다리 하나와 작은 감자 몇 개가 든 감자봉지를 샀다. 100루블이면 되는 줄 알고 하나를 내 밀었다. 받은 뒤에 내 손에 있는 100루블을 가리키며 달라고 한다. 결국 200루블 달러로 $3 조금 넘는 것으로 늦은 점심을 때웠다. 식당차는 있으나 가격이 비사고 한번 먹었지만 음식이 구미에 맞지 않아 그 후는 열차를 탈 때 슈퍼마켓에서 과일과 빵 물 등 먹을 것을 준비했다. 열차 내에는 뜨거운 물은 언제나 가서 가져올 수 있다. 러시아 인들은 티를 즐기며 커피는 별로 마시지 않는다. 여행자들은 컵과 티백을 가지고 다니면 뜨거운 물이 항상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돈이 들지 않는다. 컵과 티백이 준비되지 않은 나는 35루블 (60센트)을 주고 티 한잔을 마신 일이 있다.

Marinsk 역에는 우리가 탄 열차보다 먼저 도착하여 정차한 열차가 있었다. 우리가 탄 열차와 똑같은 모양의 이 열차는 몽고 수도 울란바타에서 모스코바로 가는 열차다. 러시아 열차의 승무원은 남여로 회색정장에 모자를 쓰며 여자들은 대부분 중년이며 여승무원들은 대부분 몸이 비대한 편이다. 몽고에서 온 열차의 승무원들도 회색 정장에 모자를 섰으나 항공기여승무원과 똑같은 모습으로 화장도 진하게 한 젊은 몽고여자들이다. 승객은 대부분이 중국인과 몽고인이다. 승무원들은 1등석의 경우 음식까지 포함하는 경우가 있어 이들에게 음식을 재공 해야 한다. 승객이 들어오면 침대를 마련하기 위해 매트레스와 카바를 의자에 만들어야한다. 떠나는 자리는 다시 카버를 벗겨 치워야하며 복도와 승객 실도 청소한다. 야간에 잠을 설쳐야하는 것도 고댄 일이다. 지금 탄 열차의 10차 담당여자는 단구에 몸이 뚱뚱하고 얼굴도 평균이하의 40-50대 여성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하는 것이 안타까워 보이기도 했다.

온종일 날이 흐리고 지금은 비가 내려 창밖의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를 마음껏 즐길 수 없다. 비가 오고 열차 밖을 내다보면 울적할 수도 있고 연인과 함께 탄 사람들은 아마도 낭만적일수도 있을 것이다. 열차는 자작나무 숲속을 해치고 나간다. 자작나무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나무로 목제로는 별로 사용가치가 없으며 공예품으로는 사용되고 겨울에 땔감으로는 적합하다. 그러나 자작나무에 달리는 차가버슷은 항암에 좋다고 하여 한국인들에게 선호하고 있으며 한국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상품이라고 한다.

압축된 가루로 물에 타서 먹기 쉽게 만들어져 있어 한국으로 수출도 하고 있다고 이르쿠츠크의 안드레 한선교사는 말했다. 지금시간 오후7시 Ob강 철교를 기차는 건너고 있다. 지금까지 28시간을 달려와 목적지 Novosibirsk 에 한 시간이면 도착한다. 30분전부터 비가 그치고 해가 나와 변화무상한 시베리아 일기를 말해준다. 열차에서 지내는 동안 낮에는 구름이 끼거나 비가 오고 저녁이면 해가 나는 이러한 기후 변화를 계속 보아왔다. 해가 나니 벌판이 밝아지고 나무들이 빛을 발한다. 시베리아는 7-8월이 강우량이 가장 많은 달이다.

8월 14일 노보시비르스크 (Novosibirsk)

노보시비르스크는 모스코바와 세인트 피터스버그 다음의 큰 도시다. 2010년 인구통계로 약 150만으로 시베리아에서는 제일 큰 도시다. 1696년에 설립된 도시로 Ob강이 시내 중심부를 흐르고 있다. 러시아에서 최초로 초등학교를 의무교육으로 실시한 도시 중의 하나다. 스탈린의 산업정책으로 러시아에서 가장 큰 공업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1932-33년은 소련의 대기근의 시기였으며 17만 명의 농촌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러들었다. 이들은 주택이 없어 시 외각 지역인 Bolshaya 에 텐트를 치고 살았으며 아직까지도 빈민가다.

노보시비르스크에 도착한 것은 8월 14일 오후 4시 4분이었다. 프레트롬에서 짐을 들어다 주는 포터를 따라 역 밖으로 나와 택시로 갈아탔다. 운전수의 복장은 꾀죄죄하였으며 차안은 담배 곽, 러시아정교의 아이콘, 여자사진, 커피 잔, 흐트러진 종이로 널려 있고 차도 오래된 것 같이 보였다. 정해진 호텔까지 $8정도이면 약간 비싸기는 하지만 바가지는 아니다. 역에서 가격을 흥정하는 것이 부당한 요금을 막는 방법의 하나다. 호텔 가격이 $120 방이 넓고 비교적 좋은 호텔이다.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라비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오랜 시간의 열차여행의 피로를 풀 겸 레드와인 한잔에 샐러드와 생선 파스타를 주문했다. 열차에서 적당히 먹은 음식 맛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식당에서 주는 와인 양은 바닥을 맴돌아 미국식당에서 주는 양에 비하면 훨씬 적었고 와인 한잔에 400루블이면 약 $7이라 미국과 비슷한 가격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피트니스 룸에서 20분간 스트레치를 하고 로비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을 주문했다. 계란 하나 오버이지, 베이컨, 감자, 빵으로 된 $15 짜리 비싼 아침식사다. 전날 저녁에 호텔에 영어 관광안내원을 부탁했으나 아무런 연락이 없어 후론트 데스크에 문의하니 영어 가이드는 모두 바빠 가이드 할 사람이 없단다. 영어로 된 안내문이나 지도가 없어 한자로 된 것을 보여 주었다. 소련관광객의 대부분이 중국관광객이 대부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터넷 조사에서 이곳의 특유한 빈민가 이야기가 있어 가보기로 했다. 그곳의 위치를 프론트데스크에 물었더니 컴퓨터로 대략 위치를 찾았다. 택시에게 위치를 이야기 했으나 그도 처음 듣는 지역이라며 네비게이터로 Bolshaya Nakhalovka 지역을 찾았다. 시베리아에 기근이 닥쳤을 때 농촌사람들이 직장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와 텐트나 가건물을 짖고 지냈던 지역이다.

호텔에서 20분 정도지나 도착한 곳으로 작은 집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실제로 슬럼가라고 하지만 소비에트시대의 낡은 아파트에 사는 것 보다 훨씬 좋을 것 같은 것은 적어도 독립주택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옛 소비에트시대아파트기 슬럼가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이 동내 옆에는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어느 건물에 간판이 있어 가까이 가보니 병원 건물로 영어와 러시아어로 철도병원이라고 적혀있으며 철도직원이 부상을 입으면 응급치료 하는 병원이라고 설명이 붙어있다.

1시간 타기로 한 택시를 더 연장하기로 하고 시내를 외곽을 가로지르는 Ob강변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운데 혼잡한 자동차의 물결을 뜷고 강변에 도착 흐르는 물결을 따라 작은 공원을 거닐며 한가한 시간을 잠시 보냈다. 공원에는 알렉산더대왕 2세의 높은 동상이 있다. 시베리아에는 그의 동상이 여러 곳에 세워져 있는 이유는 그가 시베리아 철도를 구상하고 설립한 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많은 동상은 소비에트공산당 설립자 레닌이며 여러 도시에서 그의 동상을 볼 수 있다. <계속>

<권태진/변호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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