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해선 칼럼] 전원생활

2018-05-30 (수) 12:00:00 신해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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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인연과 이유로 깊숙한 시골에 사는 노인 한분을 알고 있다. 이제 2년만 지나면 80이 된다는 이영감은 비만에 뭐다뭐에 자잘구레한 병에 시달리는 마나님과 함께 18에이커가 되는 넓은 땅에 지어진 커다란 2층 집에서 살고있다.

백발머리에 허연수염으로 얼굴을 감싼 이영감은 직장이라고는 일생동안 PG & E 뿐이다.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팔과 다리는 온통 “PG & E 훈장” 이다. 전기침이라는것도 있나보다. 마치 오랜 튀김요리 인증샷같은 조리사들의 팔에 보이는 기름튄 흔적 같은것이 이영감의 팔다리를 온통 싸고있는거다. 깜깜한 밤 폭우속에서 끊어진 전선을 잇는 작업이 가장 어려운일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PG & E에서 받은 감사패” 라고 웃는다. 그는 열열한 트럼프 팬이다. 우리가 신문지상에서나 보는 유권자중 요지부동의 30-40페센트가 된다는 바로 그 트럼프 지지파중의 한사람이다. 그에게는 트럼프의 잘못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다 이유가 있는 행동의 결과다. 한마디로 비난의 대상이 안되는거다.


비스듬한 경사진 대부분 그의 땅은 염소떼들이 자라면서 풀을 정리한다. 완벽한 자연산 Gardener 다. 염소우리 안에는 커다란 물통과 그옆에 돌소금 한두개만 있으면된다. 밋밋한 풀을 뜯어먹다가 가끔 우리에 들려 소금을 핥아서 입맛 간을 맞춘다. 그리고 혹시나 짜다면 물을 마신다. 집주변에 심어진 각종 과일나무에서는 4시4철 (3시삼철?) 계절에 맞추어 신선한 과일을 공급한다. 넓은 주위 땅 이쪽저쪽에는 많은 종류의 채소가 자라면서 입맛을 돋군다,

집 한구텅이에는 매일매일 신선한 계란을 공급하는 닭장이있다. 어렸을 한때는 민첩했었을 조그마한 한 마리 늙은 개는 아침저녁으로 닭들을 울타리에서 내보내고 들여온다.

전원생활!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꿈꾸고있을 그런 전원생활이 아닐까한다. 아침저녁 출퇴근 교통지옥에 시달리는 도시의 직장인들에게는 천국이 따로 없다. 그런데 그게 아닌가보다. 이영감은 이좋은 전원생활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힘이 든단다. 최소한 5에이커는 되어야 집한채를 허가하는 이동네 띄엄띄엄 이웃 사이로 때때로 밤중에 침범하는 코요테 (Coyote), 너구리(Rocoon), 그리고 얄미운 여우들과 싸움하는것도 이제는 지친다고 한다.

코요는 주로 염소를 친다. 여우는 닭장을 그리고 라쿤은 이것저것 쓰레기 청소부같이 뒤져댄다. 한때는 거의 20마리나되던 염소가 반으로 줄었다. 때로는 죽은 염소들이 만신창이가된채 볼품 사납게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배를 채우고나면 자기집 냉장고인양 두고 간단다. 그러면 그잔해를 모아 땅을 파고 묻는게 보통일이 아니다.

National Geographic 다큐멘타리에서나 보던 야수들의 생존경쟁 사투를 직접체험하는거다. 한때 닭지키 늙은개를 바쁘게하던 닭들이 몽땅 사라진 적도 있었단다. 여우들의 여우짓이다. 그러면 이웃 닭장에가서 병아리 몇 마리 사다가 계란공장을 부활시킨다. 세월이 가다보니 이런일 되풀이도 이젠 힘에 벅차나보다.

닭 지키던 늙은 개도 날이 갈수록 힘들어보인다. 앞다리를 절룩대고 눈이 어두워지고 귀까지 서서히 막힌다. 그 동네 갈적마다 무언가가 하나씩 하나씩 악화되더니 결국 떠난다. 그가 항상 오수를 즐기던 닭장 앞문 옆에 묻었단다. 소식을 들은 이웃들이 강아지를 주겠다고 한다지만 생각중이란다. 새로운 정이 두렵단다.

물가도 비싸다. 같은 수퍼마켓 체인이 파는 같은 물건들이 촌구석에서는 더 비싸다. 어떤건 욕을 할만큼 더 비싸다. 더욱 신기한거는 시골 마켓에서 파는 채소값이 도시의 마켓에서 파는 채소값보다 더 비싸다는 것. 계란도 비싸고 우유도 비싸다. 이빨하나 뽑는값도 도시보다 비싸다. 그래서인지 이런일 저런일 때문인지 이영감은 일생을 몸두어왔던 이 시골집과 정원을 버리고 떠나려한다. 그리고 떠난다.

<신해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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