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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의 앙콜클래식] 아내의 찬 손

2018-05-25 (금)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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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의 앙콜클래식] 아내의 찬 손
나의 아내는 몸집은 작지만 부지런하다. 피부가 백옥처럼 하얗지는 않지만 눈이 크고 코도 아름답다. 한마디로 미인형에다가 손도 작고 아름답다. 아내 스스로도 자신이 꽤 외모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해 온 것 같다. 특히 여자는 손이 고와야한다며 손이 젖어있을 때면 항상 깨끗이 닦고 크림 같은 것을 바르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런 아내를 나는 무척 사랑한다. 물론 여기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다분히 주관적인 표현이겠지만 그것은 또한 나의 일방적인(?) 감정일뿐만아니라 아내의 아름다움을 지켜주지 못한 최소한의 예의의 표시이기도 하다. 우리의 신혼은 그렇게 우아한 출발은 아니었다.

물론 충분히 우아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우아한 현재보다는 미래를 선택했다. 당시 우리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다락방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가게 창고가 바로 부엌이자 거실이기도 했다. 우리의 신혼은 시작부터 창고에서 기어나오는 바퀴벌레 그리고 벽면, 천장의 채광 유리에서 스며드는 빗물과의 전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우리의 가난을 사랑했다. 아니 가난했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서로를 아끼고 인생을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고 다툴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음악에 투자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물질 등에 대해 아내의 질투심이 일 때였다. 아내는 그 무엇보다도 내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그 무언가 알 수 없는 정열을 싫어했다. 그것은 분명히 여자라든가 사람을 상대로 한 정열은 아닌 것은 분명한데 내가 미쳐 날뛰는(?) 꼴을 도저히 이해 못하겠다는 투였다. 아니 이해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다분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듯, 그런 정신병자 취급을 한다는 것이 내가 화나는 이유였다. 물론 아내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만한 사유가 있긴 하다.

그것은 지금도 충분히 잘못을 회개하고 용서를 비는 바지만 당시로선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아내만을 사랑하겠다고 굳게 맹세하고 결혼했지만 사실 그렇지 못한 적이 많았던 점은 사과하고 싶다. 그동안 몰래 다른 여인들을 조금씩 사랑한 적도 많았고… 물론 그것은 맹세코 조금 밖에 사랑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그것은 분명히 아내의 입장에서는 용서받지 못할 일임은 분명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사죄하고 싶은 일은 내가 아내 몰래 아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음반 모아 온 일에 전폭적으로 아내를 속여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뭐 도박을 하거나 바람을 피우는 일에 비하면 그런 것쯤이야 별 것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것은 솔직히 삥땅 정도가 아니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아내를 속이고 기만하고 도둑질… 심지어 사기까지 쳤다. 허구헌날 판사러 돌아다니면서 허비했던 그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오버타임했다고 속이고 또 그 많은 돈들은 다 어디서… 물론 그것이야말로 누구나 다 하는 취미 생활에 투자한 것이었다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용서받을 수 없고 또 지금 생각해도 통곡하고 회개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면 그 어려웠더 시절에 살림을 거덜낼만큼 고가(高價) 오디오를 구입하여 아내의 가슴에 못을 박은 일이다. 그것은 지금 생각해도 내가 아무래도 조금 미쳤었던 것 같다. 그것은 돈의 액수의 크기 때문이 아니라 아내의 가슴에 입힌 상처의 크기 때문이다.

다락방 생활은 비록 어렵고 힘들었지만 아내에게는 첫 아이가 생기고 또 미래를 꿈꾸던 성스러운 장소였다. 그 성스러운 공간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작은 창고 또 그 창고에 가득찬 LP 판들은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불순분자이며 괴물이기도 했을 것이다. 사실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들의 꿈과 미래… 그것 보다 더 가치있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될 수 없는 수수께끼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아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판을 사 올 때마다 혹시 기스라도 났나, 혹시 소리가 찌그러지지는 않았는지… 전축을 크게 틀어놓고 몇시간씩 테스트하곤했다. 아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조차 문병을 마치고 레코드 점에 들러 시간을 보내던 내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특히 ‘라보엠’ 등을 들을 때면 관절염으로 뒤틀어진 아내의 손이 떠올라 아내에게 더욱 죄송스럽다. 아내는 곧 건강해져서 집으로 돌아오겠지만 테발디가 부르는 애처러운 라보엠(의 노래)만은 결코 내 곁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때문이었을까.

…이제… 그 ‘라보엠’은 가고 없고 늘 내 곁에 머무를 것만 같았던 아내의 모습… 또 그 행복했던 시절은 이제 다시는 가 볼 수 없는 그 다락방 시절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노래는 유령이 되어 버렸고… 그때 그 시절… ‘아내의 찬 손’만이 귀뚜라미의 노래가 되어… 가는 세월을 노래 하듯, 허전하게 가슴을 울리곤 한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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