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중고등 학교 국사시간에 근현대사를 배우기는 했지만, 전체 역사에 비해 짧은 기간인데다가 항상 논쟁거리가 많아서인지 배운 내용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돌이켜 보니 내 머릿속에 5.18이라는 단어가 처음 인식된 것은 대학교 1,2학년 무렵인 것 같다. 캠퍼스 어딘가에서 선배들이 틀어 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접한 것 같은데, 소위 한국 학생운동의 끝물 시기에 대학생활을 한 나는 그 다큐멘터리에 크게 집중한 것 같지는 않다. 그냥 굴곡 많은 근현대사의 한 페이지 정도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심지어 나는 당시 학보사 시사부 기자였는 데도 말이다.
작년 가을쯤 미국에서 영화 “택시”를 중국인 친구와 함께 관람하고 난 후 영화 내용을 곱씹으며 몇 가지 사실과 영화적 허구를 구분해 보다가 네이버나 위키디피아 같은 웹페이지를 통해 조금 더 자세한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나의 뒤늦은 근현대사 공부는 5.18 민주화운동 뿐 아니라 한국전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전쟁의 보다 자세한 기승전(결)에 대해서도 최근 남북 정상회담에서 종전 이야기가 거론되고 난 후 찾아보게 되었다. 여전히 역사 교과서는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지만, 부디 지금 10대들은 근현대사에 대해 나보다는 더 많이 배울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아무튼 송강호가 열연한 영화를 보며 웃고 울고 나서야 비로소 5.18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졌으니, 영화는 확실히 강력한 힘을 가진 서사이다.
영화를 본 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어떤 면에서는 비슷한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는 천안문 사태에 대한 중국인들의 태도였다.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5.18은 더 이상 “사태”가 아니라 민주항쟁이 되었지만,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천안문 사태는 여전히 “사태”로 남아 있다. 더 정확히는 사태로도 남아있지 못하고, 모두 알지만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금기어로 남아있다.
국가가 혹은 국민이 지향하는 철학이 다르니 그 차이는 인정한다고 해도, 2001년 통계로 총 7,200명의 피해자를 계산해내고 있는 5.18 민주항쟁과 달리 중국의 6월 천안문 사태 관련해서는 그런 통계조차 없다.
대학생들이 도망치다가 친구의 할머니 할아버지 집으로 들어왔다던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지만, 그 외에는 이 친구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고, 실제로 6월의 그날 모든 미디어는 통제 감시되어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다고 한다.
내게 더 놀라웠던 것은, 대부분의 본토 중국인들은 그냥 그렇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에게 그 사건은 돌이켜 이야기해봤자 나아지는 것도 없는, 지도자들에게 이미 면죄부를 주어버린 과거일 뿐이라는 것이다.
분명 당시에 죽거나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있을 텐데 그들이 아직 살아있을 때 사실을 규명하고 밝힐 의지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러한 중국인들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는데, 한국에서 세월호 관련 뉴스와 반응들을 보면 조금 비슷한 측면이 있어 납득이 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배 끌어 올리고 원인 규명한다고 아이들이 살아 올 것도 아닌데, 마음 아프고 슬프니 이제 그만 좀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너무 고통스러워 빨리 잊으려고 새로운 사람을 서둘러 만나는 사람도 있고, 그 고통과 기억 속에서 힘을 내며 남은 생을 살아내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집단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각기 다른 반응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다시 그렇게 4월이 지났고 5월이 왔고 6월이 올 것이다. 개개인에게 각기 다른 4월, 5월, 그리고 6월……. 대처 방식은 달라도, 모두에게 슬프고 아픈 기억임을 인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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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