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감동을 주는 방법

2018-04-16 (월)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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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주는 방법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안팎으로 걱정이 많았던 한국의 평창 동계올림픽은 생각보다 잘 지나간 것 같다. 동계 올림픽 이후에 개최되는 패럴림픽에는 보통 관심이 덜하지만, 그래도 메달을 따면 어느 정도 미디어의 관심을 받게 마련이다.

이번에는 한국 아이스하키팀이 동메달을 획득했다고 하는데 나 역시 부끄럽게도 경기를 보지는 못했다.

패럴림픽 아이스하키팀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한국 팀의 동메달 확정 후 대통령이 보낸 축하 메시지를 읽으며 당사자도 아닌 내가 울컥했기 때문이다.


보통 정부나 큰 단체가 보내는 축전은 자세하고 개인적인 스토리 없이 일괄적이고 흔한 표현들로 “귀하의 업적을 기리는” 경우가 대부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 축하 메시지는 팀원 하나하나의 가정 배경이나 어려움을 언급하며 개인화, 맞춤화 된 축전이었다.

경기를 본 적도 없고, 팀원들의 얼굴도 모르지만, 그 축하 글을 읽고 있노라니 제 3자인 나까지 감격스러워졌다.

그러면서 문득 나는 언제 감동을 받았는가 돌이켜 보았다. 몇몇 순간들이 떠올랐다. 라스베가스의 한 호텔은 투숙객에게 매일 청소 후 아주 작은 초컬릿 꾸러미를 침대 곁에 놓아 주었다. 작은 초컬릿 세트 정도는 사실 크게 놀랍지도 않았던 것이 호텔 자체가 비싸고 새로운 호텔이었고 이미 라운지에서는 음료와 스낵을 무제한으로 제공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이없이 나를 기쁘게 만든 것은 그 작은 초컬릿 세트에 5개의 얇은 정사각형 초컬릿이 들어있는데, 각각 다른 맛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나하나 다른 맛을 보는 게 작은 행복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호텔에서는 이미 더 크고 비싼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었고, 이미 나는 그만한 금액을 지불하고 있었지만, 정작 나를 감동시키고 기쁘게 만든 것은 매일 주는 그 작은 사은품에 다양성이라는 놀라움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즉,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성과 세심성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예측하거나 기대하고 있던 서비스는 그저 당연한 기본에 지나지 않고 개인적인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학부 시절 수업을 들을 때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당시 규모가 컸던 수업이라 (적어도 40명은 되었던 것 같다), 대학원생 조교가 있었는데 보통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성적을 공지할 때 마지막 학번 네 자리를 이용한다. 그런데 이 영문학과 조교는 예쁜 꽃 이름으로 대체하고 수업을 듣던 학생들에게 개인별로 어떤 꽃 이름이 학번을 대신하는지 이메일로 공지해 준 것이다.


즉, 적어도 40개의 이메일은 그 새벽에 보냈다는 것인데, 다수를 대하는 태도가 다른 조교들과 달랐던 이 조교의 정성과 일하는 방식에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종합해보니 “의외로 세심하게 개인에게 맞춤화”된 “작은” 서비스나 메시지 혹은 선물들이 내가 감동을 받았던 순간들이고 감동을 주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 이제 이론을 알았으니 실천을 해 볼 차례인 것 같은데……. 이 짧고 아름다운 봄날, 누구를 감동시킬지 생각하고 이를 실천해보고 싶다.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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