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요… 만남이란 우연이 아니고 운명이란 유행가 가사도 있지만 운명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우리는 가끔 베토벤과 음악의 만남같은 그런 운명의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베토벤의 교향곡 중에 ‘운명’ 이란 이름의 교향곡도 있지만 ‘운명 교향곡’은 베토벤이 붙인 이름은 아니었고 사실 ‘운명 교향곡’과 베토벤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운명이 떠오르게 하는 것은 오히려 운명이 그에게 음악을 저버리게 했을 때, 그에게 다가왔던 운명적 사투… 음악에 대한 그의 처절한 사랑이었다.
운명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을 말하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인간은 누구나 운명이라는 짐을 지고 살아간다. 운명이라는 심연의 맞은 편에 서서 운명의 밧줄에 의지하고 살아가는 곡예사… 그러므로 운명과 진실은 어쩌면 서로 마주하고 있는 동전의 양면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이란 운명과 마주치게 될 때 비로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삶의 진실과 마주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람과의 관계이든 사랑이든 아니면 예술이든… 진실과의 마주침없는 감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적으로 볼 때 베토벤의 음악은 어딘가 일그러져 있었고 또 지나치게 강렬해서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도 사실이었다. 예술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름답다고 볼 수도 없는 것이 베토벤의 음악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베토벤의 음악에서 감동을 느끼곤하는데 그것은 그의 음악이 주는 투박한 진실때문인지도 몰랐다.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기 위하여, 또 감동을 주기 위하여 베토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사실 아무 것도 없었다. 1802년. (당시 32세)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정양할 당시 그의 청각은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다. 바하나 모차르트같은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연주하며 살아 갈 수 있는 연주자로서의 생명도 이미 막을 내리고, 지구상에서 마지막 꿈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가로서의 꿈이 좌절됐을 때 베토벤에게 다가왔던 것은 비참한 운명에 대한 좌절과 죽음에 대한 유혹뿐이었다.
그런데 그 기막힌 운명이 그 운명적 존재로서 참회의 눈물을 흘릴게 할 때 그의 마음 속에는 오히려 하나의 감동이 싹트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운명과 마주칠 때에 비로소 음악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과 그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위해 헌신하고 싶다는 아이러니였다. 운명은 그러므로 그에게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스승이기도 했다. 어쩌면 평범한 인생… 아니 모차르트의 후계자 정도로 끝날 수 있었던 음악가로서의 운명은 베토벤에게 다가온 운명과 더불어 새로운 운명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는데 1808년 따따따 따! 로 시작되는 운명(교향곡)이 발표되자 사람들은 혼란과 더불어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의 음악에 여지껏 들어보지 못한 묘한 울림이 느껴져 왔기때문이었다. 마구 무너져 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딘가 비장하면서도 내면을 돌아보게하는 영혼의 울림… 특히 마지막 4악장 승리의 팡파르는 격한 감동으로 사람들을 압도시켰는데 운명 교향곡이 발표되던 1808년은 사실 음악사에서의 BC와 AD가 갈리는 순간이었다.
그 때 부터 음악은 더 이상 그 옛날 아름다움이나 찬양하던 그런 나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음악은 오히려 영혼을 궐기하게 하고 흩어진 마음을 올곧게 도전시키는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운명적 존재로서의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음악의 운명이 새롭게 탄생한 것이었다.
사실 나의 경우,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또 베토벤 음악의 열렬한 지지자도 아니었다. 나의 음악적 성향은 차이코프스키나 쇼팽같은 서정적인 음악을 듣기 좋아하며 바하나 모차르트같은 평화로운 음악이 맞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나를 늘 베토벤의 음악으로 이끌게 했던 것은 (그의 음악보다는 오히려) 베토벤이라는 존재와 음악과의 만남… 그 운명적인 요소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음악이 마주치게 하는 내면의 진실이랄까,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운명 교향곡의 감동… 그리고 그것이 마주치게 하고 말하려고 하는 그 운명적 존재로서의 자존감과 영혼의 감동이 없었다면 오늘날 과연 음악과 그처럼 깊이 사귈 수 있었을까? 아니 베토벤과 음악… 그 애절한 이야기… 그 감동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음악의 역할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로망롤랑은 운명(교향곡)이 없는 세상은 무지개 없는 하늘이라고 했다. 운명(교향곡)과의 만남… 그것은 단순히 어떤 감동의 예술을 경험케 하는 차원을 넘어서 운명에 도전하는… 좌절한 영혼들을 위해 신이 보내준 운명적 선물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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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