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진분홍 네일의 힐링
2018-04-13 (금) 12:00:00
김미라(버클리문학회원)
보고 또 봐도 역시 예쁘다. 짝 펴고 보니 진달래가 활짝 웃고 살며시 주먹을 쥐어보니 수줍은 할미꽃이 베시시 웃는다. 맘껏 멋들어진 4월이다. 감미롭도록 포근하고 폭 빠지도록 화사하게 봄이 피었다.
오늘은 오랫만에 네일 샵에 갔다. 나에게도 봄을 피우기 위해서다. 일에 지치고 조금 불편한 발과 손에 꽃을 피웠다. ‘진분홍’ 조금은 섹시하고 화사한 꽃으로. 나는 가끔 네일 샵에 간다. 내가 유일하게 부려보는 호사라고나 할까? 아니 나에게 주는 내 수고에 대한 보상이라 할까? 어쨌거나 내가 즐기기도 하거니와 중요하게 챙기는 일 중 한가지이다.
하기는 난 어릴 적부터 손톱에 물들이기를 좋아했다. 여름방학이면 언니들과 놀러갔던 외할머니댁에서 봉숭아꽃 물들이기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최고의 추억 중 하나이다. 토담 아래 줄지어 피어 있던 빨강, 주홍, 흰색 봉숭아꽃들, 보기에도 예뻤지만 손톱마다 빨갛게 물들였던 기억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행복하다.
나에겐 언니가 셋이나 있다. 어릴 적 나와 언니들은 여름방학이 되면 언제나 외할머니댁에 갔다. 시외버스를 타고 포장도 안된 울퉁불퉁한 길을 2시간 간 다음 또 걸어서 약 2시간을 가야 했던 외할머니댁 토담 밑에는 유난히 봉숭아꽃이 많았다. 자그마한 키에 무성한 이파리 사이로 피어 있던 색색 봉숭아꽃들, 우리는 가는 날로 꽃과 잎을 따서 소쿠리에 널었다. 이른 저녘을 먹고는 조금 마른 꽃과 잎에 백반을 넣고 찧어 초저녁 해지기 전 툇마루 외할머니 앞에 둘러앉아 제일 먼저 나를 시작으로 큰 언니가 손톱 위에 알맞은 크기의 봉숭아를 올리면 외할머니께서는 아주까리잎으로 꽁꽁 싸매어 주셨다. 유난히 잠버릇이 심한 나는 가끔 꽁꽁 묶어놓은 실이 움직여서 손톱은 반만 물들고 온통 손가락이 빨갛게 물들곤 했다.
오늘밤 별이 쏟아진다. 두손 활짝 벌려 별을 잡는다. 내 어릴 적 바로 그 별이다. 외할머니댁 툇마루 위 봉숭아꽃 물들일 때 슬그머니 내려앉아 손톱에 물들었던그 별이다. 오늘밤엔 진분홍색 옷을 입고 뒷동산 진달래도 데리고 오고 모이동 할미꽃도 데리고 왔다. 언니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외할머니의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코끝에 찡하다.
멀리 반도 채 차지 않은 달이 슬그머니 기웃거린다. 내일은 몸에 피어난 봄으로 더욱 화사한 하루가 되겠지. 아주 화사한 진달래빛으로 나도 너도 예쁘게 아주 예쁘게…
<
김미라(버클리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