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거짓말

2018-04-07 (토) 12:00:00 김보은(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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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대어 하는 말”을 거짓말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나는 그 꾸며 대는 일을 잘 하지 못한다.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살면서 당연히 거짓말을 해 본 적이 있다. 그것도 여러번. 어느 날엔 내 거짓말이 들키지 않고 자연스레 넘어가고, 또 다른 날들엔 그렇지 않고 들통나 버린 적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내가 거짓말을 절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단 한명 있다. 바로 엄마.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내가 “완벽하게 준비한” 거짓말도 엄마는 모두 거짓임을 알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나는 엄마의 손바닥 안에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내가 초등학생일 때, 오빠와 나는 ‘일주일간 티브이(TV)와 컴퓨터 금지’라는 벌을 받은 적이 있다. 티브이를 보고 싶었던 나는 내 나름대로 머리를 써보았다. 티브이를 다 보고 나서 엄마가 전원을 끄고 나간 그 채널 그대로에 맞춰 놓고 전원을 껐더니, 몇 일 동안 엄마가 아무말도 하지 않으셨고, 나는 당연히 “아 엄마는 모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말이 있듯, 엄마가 귀가를 하시고 “티브이 봤지?”라고 하셨고, 나는 바로 “아니”라고 대답했다. 뜨끈뜨끈한 티브이를 만지며 “그런데 왜 뜨겁지?”라고 하시는 엄마를 보고 어린 나는 “엄마는 모두 알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 이후, 내 머릿속엔 엄마는 당연히 다 알고 있겠지.. 라는 생각이 있어서일까? 엄마에게 거짓말을 할 때 내 얼굴은 시뻘개졌고, 동공은 지진이 나듯 흔들렸다. 엄마는 당연히 내 거짓말을 더욱더 확실히 가려낼 수 있었고, 나는 엄마에게 거짓말하기를 포기했다. 어차피 다 걸릴 거 자수해서 광명 찾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에.

거짓없이 많은 것들을 엄마와 공유하다 보니, 우리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다. 떨어져 살고 있지만 사소한 것들과 큰 것들을 모두 엄마와 대화하며 나눴다. 그런데 얼마 전, 몇 년만에 처음으로 엄마에게 어떤 것을 공유하지 않았다.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엄마에게 다시한번 들통이 나고야 말아버렸다. 그것도 단 이틀만에 말이다.

성인이 되고, 다른 나라에 살고 있더라도, 나는 역시나 아직까지도 엄마의 손바닥 안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다시한번 깨달은 사건이었다.

<김보은(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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