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치있는 삶

2018-04-06 (금) 박흥률 부국장·편집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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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5일 오렌지카운티 미션 비에호에 거주하는 40대 한인 펀드매니저 제임스 전(45·한국명 전훈)씨가 독감으로 사망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학창시절 웨스트포인트에서 풋볼선수로 활약할 정도로 건장했던 전씨는 독감진단을 받은 뒤 증세가 급격히 악화돼 일주일만에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 는데 사망 전 장기기증 서약을 해 6명의 다른 환자들에게 생명을 선물하고 떠나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본보 2월10일자 보도)

숨진 전씨의 모친 전정희씨는 “훈이 10년 전에 자기가 많이 아프게 되면 모든 장기를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증해주라고 DMV에 등록하면서 잘 처리해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밝혔다.

뇌사상태 환자의 장기기증은 본인이 서명을 했어도 가족의 동의없이는 이루어지지않기 때문에 모친 전정희씨와 부친 전병덕씨, 큰 형 데이빗이 서로 말을 못하고 한동안 눈물을 흘린 후에야 결정을 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장하고 착한 일을 하겠하는 아들의 큰 뜻을 따르는 것이 떠나는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 생명 구하는 일에 동의했다.


그녀는 어렵사리 아들의 장기기증에 동의를 하고 병원 밖으로 나오는 데 여러 대의 헬리콥터가 장기이식을 위해 병원 옥상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면서 자신을 먼저 데려가고 우리 아이를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다고 전했다.

전 씨는 아들을 추모하는 글을 통해 “이 세상을 뒤로 하고 행복한 곳으로 떠나면서 보여준 용기와 큰 뜻, 또 6명의 생명을 구해준 아름다운 이별이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씨의 장례식에는 뉴욕의 웨스트포인트 출신동기들을 비롯해 웨스트포인트 풋볼 선수들과 코치 등 무려 600여명의 친지들이 참석해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렸으며 그의 유골은 오는 7월 모교 풋볼구장과 교내에 안장키로 했다.

현재 가주 내에서 장기기증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은 약 11만4,000명으로 매일 22명이 장기기증을 제때 받지 못해 사망하고 있다. 특히 신장의 경우 가주 내에서 기증을 받기위해서는 대략 7~10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8세에 고혈압으로 인한 신장병 진단을 받았던 LA거주 베니 장씨는 신장이식을 신청한 지 9년만에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18세 기증자로부터 신장을 받아 이식수술 후 긴 투병생활의 종지부를 찍었다.

뉴저지에 거주하는 남재신 목사(58)도 13년간 간경화로 투병하다가 지난해 7월 유펜병원에서 4세 유아의 간을 이식받고 기적적으로 소생한 경우이다. 김현주 사모는 “어린 나이에 숨진 자녀의 간을 기증해준 미국인 부모 덕분에 남편이 새 삶을 영위하게 되었다”며 “생명의 기적은 사랑에서 나온다”며 이름모를 기증자에게 감사를 표했다.

지난 2001년 간암선고를 받은 글렌데일 거주 김현숙(당시 38세)씨는 모친과 오빠도 간암으로 숨지는 등 가족의 병력때문에 건강한 사람으로부터 간을 이식받지 못하면 생명이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당시 49세 한인 존 김씨의 간기증으로 무사히 수술을 받아 현재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이라는 제목의 김현숙씨 기사(본보 2001년 12월25일 보도)를 읽고 선뜻 간 기증에 나선 존 김씨는 간 이식수술 때문에 육신의 고통은 물론이고 본인의 생업에도 지장을 받는 등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지만 당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모르는 사람이지만 한 여성의 꺼져가는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아무 조건없이 내가 도와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후회는 없으며 오히려 한 생명을 살리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 고마울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간의 절반을 기증받기 원한다는 김현숙씨의 간절한 사연이 담긴 기사가 나간 후 20여명의 한인들이 어떻게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전화로 문의를 해왔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말로만 외치는 공허한 이웃 사랑 대신 실제로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은 전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가치있는 삶’이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말로만 이웃 사랑을 외치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만 하고 그칠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매년 갱신하는 차량등록시 장기기증란에 서명을 함으로써 불의의 사고시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일에 기자도 동참키로 했다.

<박흥률 부국장·편집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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