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움직이지 않는 미국인

2018-03-22 (목) 최효섭 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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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지 않는 미국인

최효섭 목사·아동문학가

옛날 오리건 트레일(Oregon Trail)이라는 것이 있었다. 미주리주 북서부로부터 오리건주에 이르는 3,200킬로에 이르는 긴 길을 가리킨다. 직업 변천, 직장 이동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를 하였기 때문에 번잡한 길을 ‘오리건 트레일’이라고 비유하여 말할 정도로 바쁜 길이었다. 좋은 직장을 찾아 국내를 자유로이 이동하는 것이 미국인의 생활모습이었다.

그런데 이 길이 지금은 아주 한가하다고 한다. 사람들의 이동이 극히 적어진 것이다. 요즘 미국인들은 한번 터를 잡으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필자가 사는 동네도 전후좌우가 모두 노인들인데 보통 30년 이상 한 자리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공업이 활발하게 발전한 남부지대(Sun belt)에는 70년대에만 200만 명이 움직였다고 한다. 경제 잡지 ‘비즈니스 위크’에 의하면 시애틀의 보잉사에서 일하고 있는 프로스트 씨는 LA의 큰 회사로부터 연봉 30%를 올려주겠다는 제안을 받고도 거절하였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보트 장사가 너무 재미있어 못 놓겠다는 것이다.


미국인의 70%가 맞벌이 부부이다. 두 사람이 다 직장을 가지면 이동이 더 힘들어진다.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다. 집안이 이동하려면 무척 돈이 들기 때문이다.

회사 발령으로 국내를 이동해야 하는 수는 10년 전에 비하여 20%나 줄어들었다고 한다. “사원을 한 자리에 오랫동안 정착시키면 그의 경험이 풍부해져 전문가가 되기 때문에 본인에게도 회사에도 득이 된다”는 것이 미국 경영의 전반적인 방향이다.

미국은 국토가 워낙 넓기 때문에 동서의 이동, 남북의 이동, 심지어 타주로의 이동도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인들의 표현으로 타주에서 이주하여 온 사람을 foreigner, 타국에서 이주하여 온 사람을 alien으로 부르는 것만 보아도 그들의 심리를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동의 문제에 대하여 우리가 체질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점도 있다. 미국인은 소위 프론티어(frontier) 정신이 있다. 옛날 개척민들이 서쪽으로, 남쪽으로 활발하게 이주하던 전진 정신을 미국인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미국인의 또 다른 이유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미국사회의 보수화이다. 정치 경제면에서 보수화되고 있기 때문에 이동이 둔해질 수밖에 없다. 있던 곳에 안주하고 자리를 지키려는 것이 요즘의 미국인들이다.

60년대 이전만 해도 미국교회는 붐비었다. 지금 대부분의 교회당은 텅 비고 문을 닫는 교회도 생겨나고 있다. 미국에서 활발한 교회는 흑인교회와 한인교회뿐이라는 말까지 돌고 있다. 백인교회는 힘을 잃었다.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 활동뿐이 아니라 모든 사회단체들의 모임도 약화되고 있다. 그토록 활발하던 보이스카웃 운동, YMCA운동 등 집단 활동을 하는 모임은 모두 저조해졌다. 텔레비전과 마주 앉아있고 골프나 헬스클럽 등 개인적인 운동과 취미활동에 치중하고 모임에는 나가지 않는다. 미국인의 개인주의는 더 심화된 느낌이다.

해결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움직여야 해결된다. 수고 속에 수확이 약속되고 움직임 속에 열매가 있다. 미완성 교향악처럼 중간에 끊어져도 가는 데까지 가봐야 한다. 해보지도 않고 할 수 없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정력적으로 살아야 오히려 피곤하지 않다. 인생은 자전거 타기와 같다. 부지런히 페달을 밟아야 쓰러지지 않는다.

<최효섭 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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