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저 임금 참사

2018-03-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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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을 방문한 한 한인은 새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서울 주요 아파트 단지에 경비원 근무 시간표가 붙어 있는 것이다. 내용은 2시간 근무 후 30분 쉬고 다시 2시간 근무 후 30분 쉬고 한 시간 밥 먹고 2시간 근무하고 다시 30분 쉬고 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12시간 아파트 경비실에 붙어 있어도 실제 일하는 시간은 7시간밖에 안 된다. 말로는 30분씩 쉬라고 하지만 쉴 장소도 없고 어디 돌아다닐 수도 없다. 결국 쉬는 시간도 경비실에 그냥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이 올부터 크게 오른 최저 임금이 적용된 돈을 주지 않기 위해 꼼수를 쓴 것이다.

그래도 경비원들은 불평하지 못한다. 다른 아파트들은 아예 경비원들을 내보내고 무인 감시 시스템으로 바꿨다. 요즘 같이 일자리가 없는 세상에 월급 주고 놔두는 것만 감사할 따름이다.


이 아파트 인근 패스트푸드 업소인 버거킹은 최근 문을 닫았다. 10년 넘게 아파트 주민들이 이용하던 곳으로 작년부터 무인 주문대를 도입하며 인건비 부담을 줄여보려 애썼지만 급격히 오른 임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폐업한 것이다. 이곳에서 일하던 직원들과 알바생 모두 일자리를 잃은 것은 물론이다.

문재인 정부가 올해 시간당 최저 임금을 7,530원으로 17년 만에 최대폭인 16.4% 인상하면서 이로 인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이 사실은 이런 주변 사례뿐만 아니라 통계로도 확인된다. 1월 최저 임금 대폭 상승 후 처음 나온 2월 고용 동향에 관한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취업자 증가 폭은 8년래 최저인 10만 명을 간신히 넘어섰다. 작년 9월 증가 폭인 31만 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3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산업별로는 도 소매업이 9만2,000명이 줄어 최대이고 교육 서비스업이 5만4,000명, 숙박 및 음식점 2만2,000명 등이다. 자영업자도 1년 전보다 4만2,000명 줄어 6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반면 공공 행정 및 국방, 사회 보장 행정 등에서는 5만9,000명이 증가했다. 부를 창출하는 비즈니스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이들에게서 세금을 거둬 정부가 채용하는 공무원들은 크게 늘었음을 말해준다.

이에 대해 통계청은 일자리 증가가 둔화한 것은 2월 날씨가 추워 경제 활동이 위축됐고 숙박 음식점 등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중국 관광객 감소 때문이라며 최저 임금 영향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하긴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인 최저 임금 대폭 인상을 어느 공무원이 공개 비판하겠는가.

최저 임금의 급속한 인상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LA에서도 단순 노동자를 많이 쓰는 요식업소에서는 높은 최저 임금 때문에 장사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쏟아지고 있다. 거기다 건강 보험료는 보험료대로 치솟고 그만 둔 직원 상해 소송에 이르기까지 이들을 괴롭히는 것들은 많다.

결국 이렇게 올라간 비용은 음식 가격 인상이란 형식으로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요즘 한인 식당에서는 10달러 이하로 점심 한끼 해결하기는 힘들다. 메뉴에 10달러 미만이라도 세금과 팁을 합치면 12~13달러를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한국이나 미국이나 급속한 최저 임금 상승 추세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그 신봉자들에게 이것은 증거를 가지고 토론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 종교이기 때문이다.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들은 언제나 알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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