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투운동의 확산을 보면서

2018-03-21 (수) 홍성애 법정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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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운동의 확산을 보면서

홍성애 법정통역관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을 타고 과감한 폭로를 했던 용감한 여성들이 작년도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들로 표지를 장식했고 미투는 우리나라에도 상륙해서 맹렬한 들불처럼 퍼지고 있다. 그동안 당하고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수년 동안 힘겹게 감췄던 마음의 통증들을 공공연히 알리고 나선 것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 한국은 ‘여권’이라는 말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지내 온 세월과 풍조였다. 칠거지악이니, 남존여비니 하여 절대적으로 남성의 견지에서 모든 가치를 결정했다. 첩을 두고, 기생과 술자리를 펼치며 온갖 불륜 행위를 해도 그건 당연한 남자들의 권리처럼 여겼고 여자들한텐 절대적인 정절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남자들의 바람기에는 너무도 관대해, “ 남자가 바람도 못 피면 남자도 아니지!’란 논리로 이런 행위를 가볍게 넘겼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술에 취해 도무지 기억이 안난다는 식으로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핑계를 대는 걸 우린 식상하도록 보아왔다.


여성은 한 인격체이기 전에 일차적으로는 남자의 성적 욕구의 대상이요, 아이를 생산하는 종족본능의 상대역으로 하찮게 차등대우를 일삼는 일 또한 다반사였다. 그래서 씨받이란 형태로 가난한 집 어린 처녀들이 나이 많은 세도가에 팔려가곤 했으니 성적 학대 또는 성폭력의 풍토가 형성된 사회로 살아왔던 셈이다.

미국도 별 수 없었다. 최근 할리웃의 거물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을 위시해 각계각층의 유명인사들이 성 강요 등 폭력 스캔들로 줄줄이 망신을 당하며 몰락하는 걸 우리는 눈앞에서 보고 있다. 사실 미국여성 참정권은 1920년 수정헌법 제19조의 통과로 법적으로는 인정했으나, 여전히 성차별은 없어지지 않았다.

영국은 1918년에 30세 이상 여성만 투표권이 부여되었으며, 선진국 스위스는 1971년에야 겨우 여성투표권이 허용된 걸 보면 여권운동은 기나 긴 여정을 거쳐 수많은 여권 운동가의 피눈물 나는 투쟁으로 오늘에 이른 것이다. 만시지탄의 감은 있지만 우리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양상이다.

여권이 많이 신장된 지금,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고 경제활동을 하게 되면서 음지에서 일어나는 남자들의 갑질 횡포는 노골적이고 때로는 교묘하게 수많은 여성들을 괴롭혔다. 이젠 세상이 달라졌다. 상전벽해라도 된 듯 수치를 무릅쓰고 하루아침에 표출된 사건들은 각 분야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던 유명인들의 추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심히 우려되는 건 선의의 미투운동이 역습을 당해 이차 피해를 입는 일, 반대로 마구잡이식 고발로 억울한 남성 측 피해자도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알곡엔 항상 가라지도 끼어 있듯이, 과거에 어떤 일로 앙심을 품은 여자들이 이를 악용할 소지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이젠 단단히 정신 차리고 조신하게 처신해야 하는 세상이 왔다.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강력히 이를 방지할 대책마련이 시급한 때다.

#미투 운동과 더불어 #위드유 운동은 이들 피해자들을 옹호하고 지지해 주는 강력한 사회운동으로 대두되었다. 참 다행한 일이다. 방관자에서 적극참여자로 이 운동에 동조하면서, 남녀가 적대적으로 대치하는 살벌한 관계가 아니라 공평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좋은 세상 만들기가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홍성애 법정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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