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관계에 죽고, 관계에 살고

2018-03-19 (월) 모니카 이 심리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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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 죽고, 관계에 살고

모니카 이 심리상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게 직업이다 보니 평소 지인들과 가벼운 수다를 떨다가도 대화 내용이 관계의 어려움이나 마음이 힘든 문제가 바뀌면, 정신이 번쩍 나며 귀가 종긋 세워져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상황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평소에 큰 문제없이 잘 지내던 사람도 관계의 어려움에 빠지면 금방이라도 죽을 듯 지옥을 걷다가, 힘들던 관계가 회복되면 겨울 후 봄꽃처럼 살아나는걸 보면서 우리는 ‘관계에 죽고 관계에 사는’ 사회적 동물임을 확인한다.

심리학자 매슬로우에 따르면 인간이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가 어느 정도 채워지면 소속감이 나타난다.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폭력의 피해자 경우, 관계를 통해 얻는 소속감과 사랑을 잃을 두려움이 너무 커서 폭력의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끊지 못할 만큼 인간관계는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관계는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이다. 그래서 부부나 부모자녀가 함께 상담을 오면 내담자가 3명이라고 말해준다: 아내와 남편, 또는 부모와 자녀,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 그러므로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혼자 상담소를 찾아와 다른 이를 원망하고 분노와 질타를 쏟아 부은들, 내담자와 상담사는 그 곳에 없는 그 사람을 바꿀 힘이 없다. 그러나 내담자의 심적 고통은 현실이고 사실이니 상담사는 우선 온 마음을 다해 들어주고 그의 아픔에 공감해 줘야한다.


그리고 신뢰가 쌓인 후 상담사는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없다면, 이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져 내담자가 할수 있는 일을 함께 찾아간다.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많은 사람들은 ‘저는 그 사람을 도와주고 희생하며 참았는데, 상대가 그것을 점점 당연시하거나 이용하고 때론 더 요구한다’라고 불평을 쏟아낸다. 그리고 ‘사람이면 최소한 이러이러 해야죠’하며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한 경계를 정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옳지 못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 행동의 경계를 정하는 것뿐이지, 그들을 변화시키거나 그들이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만들 수 없다.

무엇이 내 안에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지, 그리고 무엇이 내 것이 아니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인지, 바운더리를 아는 일은 건강한 관계를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사람들은 가끔 ‘선생님, 저 인간이 바뀔까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천지개벽하지 않는 한, 안 바뀌겠죠? 그러나 관계란 두 사람이 만드는 둘 사이의 공간이니 한 명이 바뀌면 두 사람의 관계의 다이나믹은 바뀔 수 있죠’라고 답한다.

대부분 우리는 상대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뀌어서 관계가 회복되길 원한다. 상대가 개과천선을 해서 바뀌어주면 고맙지만, 40~50년 동안 얽히고 복잡하게 만들어진 뇌신경 회로의 인지방식과, 세포까지 녹아든 생활 습관과 가치관이 바뀌는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우선은 ‘바뀌고 싶다’는 본인의 자각과 생각의 회로를 바꾸는 지속적인 훈련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바뀌고 싶은 자각이 없는 사람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에 계속되는 잔소리는 효력이 미미하다.

그래서 상담 중에 ‘그렇다면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입니까?’라고 종종 묻는다. 우리가 자란 한국사회는 ‘나의 것과 너의 것’ 보다는 ‘우리 것’이 더 익숙한 문화다. 그로인해 나의 것과 너의 것의 바운더리가 분명한 미국사회에서 자녀를 양육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 의도하지 않은 갈등과 혼란과 불이익을 경험하곤 한다.

영어의 ‘boundary’를 번역할 적합한 한국 단어가 없듯이 우리에게는 ‘바운더리’의 개념이 부족하다.

<모니카 이 심리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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