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구두에게 보내는 편지

2018-03-16 (금) 12:00:00 김미라(버클리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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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그렇듯이 나 또한 네가 무척 그립단다. 같이하지 못한 지도 어느덧 두 해. 난 많이도 변했는데 넌 여전히 그대로다. 매초롬한 자태에 빛깔 좋은 너, 자신 없는 몸매에 빛깔 잃은 나. 유자꽃 향기가 아침을 열고 따사로운 햇살이 우릴 두드린다. 두 해 전 봄은 그대로 왔고 두 해 전 너 또한 그대로인데 두 해 전 나는 아득하기만 하다. 바람이 분다.

너와 함께했던 추억들이 봄바람되어 불어온다. 햇살이 눈부시다. 너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햇살되어 부서진다. 내일은 바람도 안고 햇살도 안고 너와 나 꼬옥 함께하고 싶다.

오늘은 오랫만에 버클리에 있는 레스토랑에 갔다. 따사로운 햇살에 무르익은 봄이 버클리 거리마다 만발하고 있었다. 길가에 늘어선 노점상들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타소리, 까맣게 그을린 손으로 공예품을 만드는 여인, 자그마한 이젤에 그림 그리는 노인, 그들 사이사이로 젊음들이 걷는다. 모두가 살아있고 활기찬 버클리의 여전한 모습이다. 얼굴색도 가지가지, 모습도 가지가지 그러나 역시 젊다.


4년 전 봄, 난 미시간에서 이곳으로 이사했다. 이사한 첫 해에는 거리마다 핀 갖가지 꽃과 좋은 날씨에 감탄했으며 특히 처음 본 버클리는 매우 인상적이였다. 의아하기까지 했던 다양한 공존이 여기에 있었다. 여러 종류의 가게들, 각 나라의 레스토랑들, 사람들이 다양하니 모두가 다양했다. 최고의 멋쟁이에서 최하의 노숙자까지.

반나절이 넘도록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난 구두 한 컬레를 샀다. 굽이 높은 하이힐인데 색이며 디자인이 내 마음에 꼭 들었기에 무리해서 산 내겐 아주 비싼 구두이다. 그날은 친구 생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몇몇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가장 아끼던 하이힐로 한껏 멋도 부렸다. 바로 그날 밤에 난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수술 후 4일만에 의식을 찾았다. 그후 한달만에 뇌수증으로 다시 수술을 했다.

이런 이후로 난 오른쪽을 모두 잃었었다. 그러나 난 자신이 있었다. 걸을 수 있고 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분명하게 있었다. 물리치료와 한방치료, 그리고 수영과 사우나, 마사지 등을 열심히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난 걷고 쓰고 음식도 하며 일도 한다. 다만 내가 좋아하던 그 하이힐은 아직 신지 못한다. 오늘 오랫만에 본 버클리는 이런 나의 슬픈 추억을 들쳐냈다. 지금도 날 기다리는 너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오늘밤 꿈에서라도 봄나들이 가자.

<김미라(버클리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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