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슬픈 전통

2018-03-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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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클레스(‘민중의 영광’이라는 뜻)는 기원 전 4세기 이탈리아 남쪽 시칠리아 섬 시라쿠사의 간신이다. 어느 날 시라쿠사의 독재자 디오니시우스 2세가 권좌에 올라 온갖 호사를 다 누리고 있는 것을 부러워하자 디오니시우스는 자신과 자리를 바꿀 것을 제안한다.

기쁨에 찬 그가 권좌에 앉아 권력이 주는 온갖 특권을 즐기며 천장을 바라보는 순간 가느다란 말 꼬리 털 하나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날카로운 칼을 발견한다. 기겁을 한 그는 디오니시우스에게 사정해 간신히 그 자리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권력의 위험성을 경고한 이 우화가 전해진지 2,30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그 교훈을 잊고 권력 추구에 온 힘을 쏟고 일단 권좌에 오르면 천년만년 그 자리에 앉아 있을 것처럼 행동한다. 이 교훈을 가슴 속 깊이 새기는 것이 대한민국만큼 필요한 나라가 없는데도 아직도 정치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치의 비극은 이승만부터 시작됐다. 그가 애초 헌법이 정한대로 조지 워싱턴처럼 두 번만 하고 물러났더라면 많은 사람들이 그를 국부로 인정하는데 인색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럴 것을 온갖 잡스런 이유로 3선 개헌을 밀어부쳤고 그것도 모자라 한 번 더 하려다 민중 봉기로 쫓겨나 하와이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

그 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이승만으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채 똑같이 3선 개헌을 우격다짐으로 통과시키고 역시 종신 집권을 꾀하다 부하의 총에 맞아 비명횡사했다. 투데타로 정권 잡은 자의 말로를 목격하고도 전두환과 노태우는 12.12 쿠데타에다 5.18 민중 학살까지 저지르고 청와대에 들어 앉았으나 결국은 퇴임 후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았다.

그 후 민주적으로 정권을 잡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박근혜의 말로도 밝지 않았다. 김영삼은 아버지를 대신해 돈을 받은 아들 김현철이 감옥으로 끌려가 할복 소동을 벌이는 것을, 김대중은 세 아들이 모두 기소돼 둘이 철창 신세를 지는 것을 바라봐야 했다. 노무현은 처 권양숙이 박연차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과 관련 조사를 받다 자살했고 박근혜는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방조하다 지금 감옥에 있다.

그리고 지난 14일 전직 대통령 중 유일하게 몸성히 있던 이명박이 100억대 뇌물죄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그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그가 집권하던 때 자살한 노무현의 비서실장이 대통령으로 있는 지금 무사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을 한 번 한 사람은 망명하거나 피살되거나 본인이나 아들이 감옥에 가거나 자살하거나 하는 한국의 슬픈 전통은 확고히 굳어지게 된다. 그런데도 대선 때만 되면 너도나도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대니 까닭을 알 수 없는 일이다. 권력은 호랑이 등에 오르는 것과 같다. 타고 달릴 때는 신나지만 일단 내려오는 순간 스스로 호랑이 밥이 되기 십상이다.

이명박은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대학을 마치고 현대 건설에 입사해 37살에 사장이 되는 ‘샐러리맨의 신화’를 썼으며 서울 시장이 된 후 청계천 복원 사업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고 2007년 521만 표라는 최대 표차로 정동영을 누르고 대통령이 됐으나 이 모두 이제는 희미한 추억일뿐 올 76세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랜 감방 생활뿐인 것 같다.

그는 검찰 청사에 들어가기전 이런 일을 겪는 것은 자신이 마지막이길 바란다고 말했으나 과연 그의 소원이 이뤄질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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