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래방과 미투

2018-03-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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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모든 민족들의 노래실력을 일일이 비교해 볼 수는 없겠지만 한국인들만큼 노래 부르기 좋아하고, 노래 잘 부르는 민족은 드물다. 예로부터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민족으로 평이 나 있었고, 그 유전자는 수천년을 이어 우리 몸속에 살아있다.

그래서 유난히 잘 되던 비즈니스가 노래방이었는데, 요즘 한국에서는 노래방 업주들이 울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직장 회식이나 술자리 뒤 술도 깰 겸 흥도 이어갈 겸 노래방으로 향하던 ‘2차’ 발길들이 뚝 끊어진 때문이다. 미투 열풍이 휘몰아치면서 성희롱이나 추행 논란이 생길 수 있는 모임들은 아예 피하는 분위기이다.

건전하게 노래만 부르면 아무 문제없을 것을 술 핑계로 엉뚱한 짓을 하는 ‘썩은 사과들’ 때문에 노래방이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방방에서 꿍꽝꿍꽝 연주 소리, 노래 소리가 쏟아져 나와야 할 시간에 업소가 절간처럼 고요한 날들이 계속되자 업주들은 폐업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가게 월세도 내기 어렵다면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한때는 ‘열기만 하면 돈 번다’던 업종이 고 난의 시기를 맞았다.


노래방이 처음 한국에 등장한 것은 1991년이었다. 시작은 1988년 영풍전자가 컴퓨터 전문 음악연주기 개발에 성공한 것. 이어 부산 로얄전자의 도움으로 자막기가 개발되면서 화면에 가사가 나오는 노래방 기기 1세대 모델이 탄생했다.

그때가 1991년 4월이었다. 가사를 보며 노래를 하면 반주가 나오는 기계에 대해 대중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알 수가 없었다. 시험적으로 부산의 동아대학 앞 오락실에서 처음 기계를 선보였는데, 인기가 기대이상이었다. 그래서 다음 달인 5월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문을 연 하와이 비치 노래연습장이 한국 최초의 노래방이었다.

노래 좋아하는 민족에게 노래할 공간이 생겼으니 노래방 열풍은 전국을 달구었다. 1호 노래방 등장 후 1년 만에 전국에 1만개가 넘는 노래연습장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1992년 4월 한국의 한 유명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썼다.

“근간에 노래방이 열병처럼 번지고 있다. 혼자 가건 짝지어 가건 돈 내고 실컷 노래 부를 수 있게 돼 있는 밀실화 된 신종 노래공간이다”

이후 근 30년 노래방은 한국인들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직장회식 후 2차는 당연히 노래방이고, 친구들끼리 몰려가서 한바탕 스트레스 푸는 곳도 노래방, 가족들이 저녁식사 후 산보 겸 찾아 가는 곳도 노래방, 하소연할 데 없어 가슴 답답한 주부들이 마음껏 소리 지르러 가는 곳도 노래방, 가수가 꿈인 가난한 청년이 노래연습하러 가는 곳도 노래방 ….

노래방 열풍은 태평양 건너 미주한인사회에 그대로 재현되었다. 남가주에서는 90년대 중반부터 노래방 붐이 일었다.

미투 운동의 파편이 노래방을 강타했다. 노래방 업주들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고,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느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건전해야할 노래방이 차츰 조명이 어두워지고, 외부에서 볼 수 없게 차단되는 등 칙칙한 분위기 조성에 일조한 측면도 없지는 않다.

미투 열풍은 한동안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직장회식 뒤풀이 장소로 한동안 배제될 것이다. 노래방 분위기를 밝게 개선해서 가족단위 친구단위 손님들 유치에 공을 들이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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