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자신을 삼십년 된 독자라고 밝힌 분의 편지를 받았다. 그야말로 손으로 쓴 손편지였다. 요즘 세상에 문자나 이메엘이나 전화로 의사를 전달하지 컴퓨터도 아닌 손으로 쓰는 편지를 쓰고 또받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일 것이다. 그래서 이 편지는 더욱 소중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나보다 몇살 아래라고 소개하면서 얌전한 글씨로 담담하게 자신의 심경을 밝혔는데,내글이 수식어 하나 없이 늘 공감할 수 있어 좋아하며 또 열성 팬이라고 했다.
그녀가 삼십년된 내 독자라고 하니 내가 이십대때 시로 문단에 나온 후 미국으로 이민
을 오고 또 연년생 아이들을 기르면서 너무 바빠 글쓰기를 미루고 있다가 다시 펜을 잡기 시작한 때다. 모든 글쟁이들은 자신의 독자들이 전화로 연락을 하거나 이렇듯 편지를 보내줄 때가 제일 기쁘고 행복하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내 글을 좋아하는 독자가 있어서 늘 내 글을 읽어주고 공감 내지 감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순수한 기쁨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쁨 때문에 필자들은 글을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사람들은 인정 받기를 원한다. 아이들도 야단을 맞는 것보다 칭찬 받을 때가 더 행복한 것은 물론이다. 주위를 살펴보아도 칭찬 받고 사랑 받은 아이들이 더 잘 자라고, 또 남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성인들로 자란다.
우리 딸과 막내 쟌이 아주 어릴 때 우리 가족들은 한 오년간 텍사스에서 산 적이 있다. 그때 그곳은 오일 붐 때문에 미전역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가 살던 동네는 새로 개발된 곳이었는데 동부, 서부, 또 토배기 남부 사람들로 엉켜 살았고 젊은 부부와 아이들이 많았다. 학교 건물도 새것이었고 동네마다 올림픽 사이즈의 수영장과 테니스 코트도 몇개씩은 기본이던 곳이다. 나도 그곳에 살 때 테니스를 배워 한 이십년간 테니스를 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치던 테니스가 나중에 나의 기본적인 건강을 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이들은 커서 어린 시절을 얘기할 때마다 그곳에서 보낸 유년기가 제일 재미있었다고 입을 모아 말하곤 했다. 집만 나가면 많은 아이들이 있어서 심심할 틈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은 더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긍정적인 사람들로 자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요즘 내 딸의 아이들을 보면 이웃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어서 아이들도 엄마들이 데이트를 만들어 주어야 서로 만나서 놀 수가 있다. 그래서 학교가 끝나면 엄마들이 아이들을 차로 친구네 집에 데려오고 데려가곤 한다. 참 많이 달라졌다. 나는 일찍 아버지를 여위었지만 막내여서 가장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탓에 늘 씩씩하게 자랄 수 있었다. 그런 성격이 나를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 같다.
그 시절은 많은 사람들이 밥도 제대로 못먹던 때여서 집에 전화를 가진 사람은 부자나 가능했다. 그래서 전보나 편지로 밖에 연락을 할 수 없던 때다. 우리들은 누구나 첫사랑을 기억할 것이다. 밤을 새워 편지를 써놓고도 부끄러워 부치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어쩌다 용기를 내어 편지를 부치곤 몇날 며칠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곤 했다. 답장이 온날은 또 가슴 설레어 떨리는 마음으로 그 편지를 뜯어보곤 했다. 그때는 누구나 손 편지를 쓰던 때다.
나는 겨울 방학때 시골집인 과수원에 오면 툇마루에 서서 눈 덮힌 하얀 신작로를 걸어 혹 그가 올까하고 목을 빼고 첫사랑을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오빠 친구였던 그는 어느날 정말 꿈처럼 내 앞에 나타났다. 큰 대문을 열자 키가 큰 그가 내 앞에 버티고 있었다. 오빠는 그때 신혼차 신부의 집인 김포 어느 시골에 가고 집에 없었다. 그의 식사와 수발을 내가 들게 되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나 보다. 우리 둘이 함께 사랑에 빠지던 날이---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 우리는 서로 운명이라는 이름 아래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각자의 인생을 살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그런대로 행복하게---. 김소월의 시 한구절이 생각난다. “못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라는.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 처음엔 못살것만 같은 그런 괴로움도 세월 앞에는 다 잊쳐지게 마련이다.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 이 말은 불멸의 명언이다.
나도 이젠 손으로 편지를 쓰는 것은 가끔 카드 같은 것을 보낼 때 외는 별로 쓰지 않는다. 그래서 그만큼 손으로 쓴 편지는 귀하다. 날씨가 확 풀려서 정말 봄이 온 것 같다. 나도 땡큐 카드에 답장을 했다. 물론 손으로 쓴 글이다. 산들 바람이 불어와 내볼을 간지럽힌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이 행복한 오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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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