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밥은 사랑이더라

2018-03-12 (월)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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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사랑이더라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인기있는 한국 쇼 프로그램 중에 ‘냉장고를 부탁해’가 있다. 유명인의 냉장고를 가져와 냉장고 안 재료들을 가지고 몇몇 요리사들이 15분 안에 요리를 만들어 내고, 냉장고의 주인이 그 요리를 평가하는 프로그램이다, 얼마 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든 램지까지 등장했다.

냉장고 주인은 종종 여러 테마를 내 놓는데 최근 한 배우는 현재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니가 해준 집밥을 테마로 걸었고, 요리사들은 각자 엄마의 손맛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냉장고 주인은 음식을 먹으며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혼자 살기 시작한지 10년차가 되니, ‘밥’으로 표현되는 먹을 것을 누군가 사주거나 싸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 가치를 점점 더 깨닫게 된다. 처음 유학 올 때, 혼자 살면 굶어 죽을까(?) 걱정이 되어 간단한 요리책을 하나 들고 왔었다. 하나 하나 책대로 해보니 먹을 만한(?) 음식이 만들어지는 게 그저 신기해서 이거 저거 만들며 스스로를 기특해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또한 흐름이 있어서,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요리에 급 매진하는 시기와 요리와는 담 쌓은 시기가 무슨 우기와 건기처럼 번갈아가며 돌아오고는 한다.

그런 나와 이번 학기에는 20대 초반의 사촌동생이 같이 살게 되었다. 대학교 복학 결정이 갑작스러웠던 관계로, 그녀의 수업 시간표는 주 5일을 아침 8시 수업으로 시작한다.

미성년자도 아니고, 자기 일은 알아서 잘 하는 아이라 특별히 보살필 일은 없다.

하지만 단 한가지 내가 신경 써주는 게 있다면 학교에 데려다 주는 일과 먹을 거 챙겨주는 일이다. 매번 밥하고 요리해서 식사를 차려 주는 건 아니지만, 사촌동생이 잘 먹는 것들을 챙겨 사다가 넣어주고, 아침식사류와 반찬, 간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는 일이다.

나는 저녁 약속이 있어 나가면서도, 밥반찬을 만드는 나를 보며, 한국에 계신 엄마 생각을 많이 했다.

엄마는 나의 아침식사에 집착(?)하셨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매일 아침 눈뜨면 나가기 바빴지만 엄마는 대학생 딸의 아침을 반드시 챙기고 때로는 숟가락을 들고 따라다니셨다. 피곤하고 입맛 없는데 왜 자꾸 아침을 먹으라고 하느냐고 나는 짜증도 냈었다.

지금 그 반대 입장이 되고 보니 밥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차저차 힘들고 바쁜 어른이 된 사촌 동생에게도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학교에 데려다 주고, 먹을 것 챙겨주는 일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엄마의 내 ‘밥’에 대한 집착은 그것만이 엄마가 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이자, 해줄 수 있는 것의 전부였음을 이제야 알게 된다.

당장은 그저 어떻게 하면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할까에 몰두하고 있는 사촌동생도 더 나이 들어 혼자 살다 보면, 잠시라도 어딘가 얹혀 살 데가 있다는 것이 감사한 복이고, 밥 주는 사람이 최고라는 것을 깨달을 때가 올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 밥과 공간을 제공했던 부모와 친척, 그리고 친구들의 마음이 다 사랑이라는 것을 요즘 절실히 깨닫고 배운다. 그래서 오늘 저녁 메뉴는 또 뭐가 되어야 할지 고민한다. 대보름에 먹다 남은 나물 넣고 밥을 볶아 볼까, 떡볶이를 만들까…….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이구나. 당장 내 점심부터 챙겨야겠다 싶어 피식 웃는다.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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