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평등을 향한 기나긴 행진

2018-03-10 (토)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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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 전 미국 여성노동자들의 삶은 비참했다. 당시 미국은 남부 유럽과 동구로부터 대규모 이민물결이 밀려들면서 급속히 도시화하고 산업화하던 때였다. 대부분 가난 탈출을 위해 대서양을 건너온 이들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공장 노동력으로 투입되었다.

작업환경은 열악했다. 유태인, 폴란드인, 이탈리아인,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등 이민자들은 산업노동력의 최하위층을 차지하며 차별받고 착취당했다. 그리고 그 최하위층 중에서도 최하위에 있던 것이 이민가정의 딸들이었다. 보통 14살만 되면 공장에 나가 값싼 노동력으로 소비되었다.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은 극심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의 90% 이상이 이민자들이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성차별에 이민자 차별 등 이중의 차별을 감수해야 했다. 여성들은 방직공장 등 몇몇 분야에서 최하위 비숙련 직으로만 고용되었고, 남녀 임금차별은 당연시 되었다. 보통 남성 임금의 절반에서 1/3 정도. 공장에서 일주일 일하면 남성은 10달러 받을 때 여성은 5달러를 받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10여 시간씩 일해도 렌트비 내고 식품비 감당하며 생계를 잇기가 어려웠다. 공장주나 감독의 성희롱 성추행은 다반사였다.


1908년 2월 참다못한 여성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뉴욕시의 의류공장 여성노동자 수천명이 파업에 돌입해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여기저기서 1년 이상 이어졌고, 이듬해인 1909년 2월28일 이를 기념하기 위한 전국 여성의 날이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이어 1910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세계 여성노동자 대회에서 독일의 사회주의 노동운동가 클라라 제트킨의 제창으로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이 만들어졌다. 처음 생존권을 내세운 여성들의 노동운동은 기존의 참정권 운동과 연결되며 포괄적 여성권익 운동으로 확대되고, 이후 다양한 법적 제도적 양성평등을 요구하는 운동으로 진화해왔다.

그로부터 110년이 지난 지금 여성들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상전벽해라고 할 만큼 분명하게 나아졌다. 한 세기에 걸친 여권운동의 성과이다. 그렇다면 양성평등은 달성되었을까.

‘201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미국은 물론 한국, 프랑스, 스페인, 브라질 등 세계 곳곳에서 여성들의 시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진 것을 보면 아직 갈 길은 멀다. 변화가 부지하세월인데 대한 항거의 표시로 여성들은 프라이팬과 냄비를 두드리고, 주먹을 치켜들고, 분노의 함성을 질렀다.

스페인의 경우 여성들은 1일 가사파업을 벌였고, 10개 노동조합이 24시간 총파업으로 양성평등 운동에 힘을 보탰다. 스페인의 성별 임금격차는 공기업의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13% 덜 받고, 사기업에서는 19% 덜 받는다. 유럽연합 전체로 보면 지난 2016년 기준 여성은 남성에 비해 시간당 평균 16.2%를 덜 받는다.

미국에서는 석사학위를 가진 여성이 학사학위만 가진 남성에 비해 봉급이 적다고 8일 경제정책 연구소가 발표했다. 퓨 리서치 센터에 의하면 여성은 시간당 남성의 83%(2015년 기준)를 벌어서 여성이 남성만큼 벌려면 44일을 더 일해야 한다. 임금 차별만이 문제는 아니다.

올해 세계 여성의 날 행사 열기가 특별히 뜨거웠던 것은 #미투 운동 때문이었다.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근년 주춤했던 성평등 운동이 대전환점을 맞았다. #미투 운동 기세에 온 나라가 뒤집힐 듯 충격을 받고 있는 한국에서는 특히 8일 여성의 날 행사를 성폭력 철폐 운동의 날로 삼았다.


모든 변화는 고통을 동반한다. 강고한 기존의 벽을 깨는 고통, 그로 인해 기득권층이 깨어지는 고통이다. 타임이 201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침묵을 깬 사람들’이 좋은 예이다. 입을 다물어야 하는 것으로 되어있던 오랜 관행을 깨고 입을 열어 고발한 사람들, 미투 운동가들이다. 침묵을 깸으로써 맞게 될 고통에도 불구하고 입을 연 사람들이 그 뒤로 줄을 이었다.

그리고는 많은 것들이 깨어졌다. 도저히 대적할 수 없어 보이던 권력의 벽들이 깨어지고, 평생 존경과 숭배의 대상으로 군림하던 자들의 가면이 깨어지고, 권력형 성폭력 가해자들의 그럴듯한 말의 권위가 깨어졌다. 피해 여성들에게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던 시선들은 이제 가해자들에게로 향하고 있다.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 그 신뢰의 추가 이동한 것이다.

세상에 갑자기 일어나는 변화는 없다. 지금 #미투의 폭발적인 힘은 오랜 세월에 걸쳐 더디게 하지만 단단하게 토양을 다져놓은 여권운동의 산물이다. 여성들이 입을 열 용기를 내고 세상이 그 말을 들어줄만한 토양이 조성되었으니 가능한 일이다.

양성평등의 고지는 멀다 해도 우리는 이제 이만큼 왔다. 우리의 딸들과 손녀들은 평등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평등을 향한 길고 긴 행진은 계속 될 것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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