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평화’ 는 이런 것이다

2018-03-09 (금) 강창구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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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는 이런 것이다

강창구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얼마 전에 조지아주 애틀란타에 회의가 있어서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입구에서 아이 둘 딸린 젊은 엄마를 보았다. 어린 아이 둘과 함께 움직이는 엄마의 핸드백과 가방이 올망졸망 서너 개이다.

그 중 하나를 건네받아 건물 안까지 날라줬다. 오전 그 시간 공항은 수많은 노선으로 분주하고 북적이게 마련인데 이 모녀들을 공항 모서리에서마다 만나더니 탑승해서 좌석에 앉으려고 보니 같은 좌석이다. 세상에나!

갓난아기와 5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금방 알아보고 웃는다. 그 때부터 2시간동안 이 엄마의 놀라운 손놀림이 시작되는데 도와 줄 겨를도 없다. 잠시도 쉬지 않고 이 가방 저 가방에서 먹을 것, 그림 그리는 것, 흔드는 것을 꺼내고 스티커를 붙였다 떼었다 한다.


한눈 한번 팔지도 않고 쉼이 없다. 그 동작 하나하나를 보고 있으니 피곤함마저 가신다. 그걸 신기하다고 해야 할까, 위대하다고 해야 할까, 숭고해 보이기까지 하다. 마치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결국 어린아이가 울고 보채니까 스스럼없이 젖가슴을 내보이며 젖을 물렸다. 순간 조용해졌다. 손놀림도 멈추고 격랑이 지나간 듯 ‘평화’가 찾아 왔다. 숭고해 보였다. 이걸 나는 ‘평화를 위한 본능’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아주 먼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만 한국은 73년 전까지는 한나라였다. 한 어머니 아래서 젖 먹고, 웃고, 놀았던 한 가족이었다. 올림픽행사는 따지고 보자면 ‘허세’적인 요소가 많은 게 사실이다.

권력자들은 고대 피라미드처럼 ‘큰 건축물’이나 ‘규모의 잔치’들을 좋아한다. 그래야 앞에 설 기회와 위력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은 2011년 이명박 대통령시절에 유치하였다. 그간 정권이 두 번 바뀐 뒤에 열렸고, 무사하게 끝났다. 올림픽이 시작되기도 전에 유독 일본과 국내 일부언론은 ‘평양올림픽’ ‘분열올림픽’ 등 행사 자체를 비토하고, 세계가 남북을 지켜보고 있는데 갖은 음해와 훼방을 놓는 듯 했다. 철없는 어린아이가 평소 얌전하다가 하필이면 손님 오는 날 성화를 부리는 경우와 같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주최국으로서 기대이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올림픽 기간 내내 이어진 남북한 교류 때문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올림픽 기간 중 평화분위기는 갖은 음해를 일삼던 사람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후 열흘 뒤, 올림픽이 끝나면 한반도에서 한미군사훈련을 하느니 마느니 하는 논쟁의 말미도 주지 않고 대북특사단은 오는 4월말에 판문점에서 남북정상이 만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빨라도 너무나 빠르다. ‘한반도의 평화’는 자국의 이익과 배치된다는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가 미처 계산기 두들길 시간도 주지 않고 가슴부터 확 열어 버렸다. 말로만 통일을 외쳤던 그 동안의 정권들에 익숙해진 국민들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나야 통일이다’라고 했다. 물론 통일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겠지만 적어도 불과 2달 전까지 한반도를 억눌렀던 ‘전쟁공포’는 없어진 게 아닌가, 이것은 현실이다.

내 자식에게 젖 물리는데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던 그런 마음이래야 ‘평화’를 가져올 자격이 있다. 그렇게 복잡할 것도 없다. 국민이 잘 먹고, 잘 자고, 웃게 만드는 게 평화다. 누가 그걸 방해하려 하는가!

<강창구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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