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지 않은 길

2018-03-07 (수) 김유진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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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김유진 카운슬러

매일 아침 같은 시간 울리는 알람소리에 잠에서 깨면 부랴부랴 출근준비를 마친다. 정신없이 집을 나서 차에 오르면 버릇처럼 익숙한 길로 출근을 한다. 하루는 주유 경고등에 불이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주유소에 들려야겠구나 생각했다. 집을 나서 출근길 방향으로 차를 몰다가 늘 가던 주유소를 발견하고 차를 유턴시켜 주유소로 들어갔다. 기름통에 주유호스를 끼 워넣고 보니 내가 가던 방향에 있는 주유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 나는 왜 굳이 유턴을 하였던가!

이런 아차의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저 길로 가면 좀 더 빨랐을 것을 나도 모르게 익숙한 길로 들어서 버렸다거나, 장을 보고 집에 가야지 생각을 하고도 어느 새 집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서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반복으로 인해 고착되어진 우리의 행동이나 생각은 우리의 삶에 크게 혹은 작게 영향을 끼친다. 고착된 행동이나 생각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고 계산하는 노력을 줄여준다. 익숙한 길을 갈 때에는 네비게이션을 켤 필요도 어느 길로 가야할지 생각할 필요도 혹은 이 길이 맞는지 긴장할 필요도 없다.


또한 고착된 행동이나 생각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준다. 이미 여러 번의 반복을 통해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예상치 못한 일로 인한 위험부담을 줄여준다. 새로운 선택이 실패하여 후회를 맛보기보다 익숙하고 안전한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더 효과적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익숙함이 때로는 우리에게 독이 되기도 한다. 더 편한 길 빠른 길을 두고도 익숙한 그 길로 돌아가게 만들기도 하고, 기능이 향상된 새로운 모델 대신 익숙한 이전 모델을 자연스레 집어 들어 새로운 문물로부터 멀어지게도 한다.

고착된 행동이나 생각은 때로 우리 삶의 민감한 부분, 마음 깊은 곳 까지도 영향을 끼친다. 우울한 사람에게 술 한 잔은 위로였을 것이고, 병에 걸릴까봐 두려운 사람에게 손 씻는 행동은 위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복되어지고 빈도가 증가되면서 위로와 위안을 주던 행동은 문제행동으로 바뀌게 된다. 술 한 잔은 한 병의 술로 바뀌고, 한 시간에 한 두 번이던 손 씻기 행동은 어느새 10분에 두세 번으로 바뀌어 있다. 그리고 우울이나 불안을 느끼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미 몸에 익숙해져 버린 그 행동을 선택하게 된다.

상담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 중 중요한 한 가지가 이러한 우리의 고착화된 생각 혹은 행동을 바꾸는 일이다. 어떤 원인으로 문제 행동이 시작되었는지, 어떤 과정으로 문제 행동이 강화되어져 왔는지를 탐색한다. 그리고 익숙한 문제 행동 대신 더 건강하고 효과적인 대안행동을 찾고 대체시킨다.

나의 어제를 되돌아 볼 때, 생각 없이 반복되고 있는 나의 행동이나 생각은 없는가? 그것이 나의 삶을 더욱 불편하게 하거나 나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고착된 행동이나 생각이 우리의 삶의 질과 정신건강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면, 생각 없이 반복되는 모든 우리의 행동과 생각을 되돌아 볼 필요는 없다. 또한 매일 나의 행동을 탐색하며 어떤 선택이 더 효과적일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가끔 나의 어제를 돌아보며 어제는 가보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찾아보고, 오늘은 그 길을 가 보면 어떨까?

<김유진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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