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셋, 참 다르다. 첫째 세빈은 늘 투덜거리며 할일을 하고, 하고 싶은 건 남 신경 안쓰고 열심히 한다. 반면 둘째 아빈은 뭐든 적극적으로 열심히 해서 잘하는 것도 많다. 칭찬, 보상, 사람들의 관심이 꽤나 유효한 아이다. 막내 유빈은 놀다가 못하고 쉽게 지루해져 혼나지만, 눈치도 빠르고 웃음도 많아 내가 가장 편하게 즐기는 아이다. 같은 배에서 나왔지만 이렇게 성격이 다른 건 인간의 다양성의 한 예일 거다.
그 덕에 매일 지루할 틈이 없다. 아이 셋 모아두면 업앤다운이 어찌나 많은지. 자기들끼리 좋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다가 갑자기 한명이 틀어지면 순식간에 질서, 평안, 행복, 기쁨은 사라지고 이내 전쟁터로 바뀐다. 날씨 혹은 학교 등 신체적, 심적 피로가 있을 땐, 괜한 시비, 짜증, 투덜거림이 더하다.
아이들 소란의 조율왕은 나다. 아이의 미성숙함, 긍정적 경험의 중요성, 문제에 올바른 대처 등. 다양한 경험과 가르침에서 아이들이 배우길 바라는 나는 최대한 설명, 설득, 조율하며, 긍정적으로 바꿔주려 노력한다. 나이 터울이 적어 “형제간 경쟁 구도”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절실한 긍정적 관계 발전이 늘 나의 관심사다. 그 덕에 아이들은 나이스한 엄마라며 좋아하지만, 나도 폭발할 때가 있다. 역시 조율하기란 힘든 일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나에게 세빈의 어김없는 투덜거림이 귀에 꽂히는 날, 나는 이내 군 태세로 돌입한다. 다소 엄한 표정으로 한 아이에게만 말해도, 셋은 알아서 스스로의 조율에 들어가고 곧이어 서로 마구 도우며, 듣기 좋은 말들을 남발한다.
샤워를 도와주는 내게 유빈은 “엄마가 나이스하면 잘 안하는데, 엄마가 무서우면 잘하게 돼.” 그 말에 내가 “그럼 엄마가 늘 무서워야 잘하겠네?”라고 말하자 “아니야 아니!” 외치며 웃는다. 5살 아이도 자기 행동변화를 스스로 느끼나 보다.
넘어갈 줄 알았던 투덜거림이 비상사태로 연결되자 세빈은 곧 후회하고, “요즘 딴 생각이 많지? 생각과 삶의 밸런스를 찾아.” 다소 냉정하게 말하는 내게 아이는 서둘러 “네” 라며 수습한다. 마음과 생각과 삶에서의 밸런스를 찾고 다스릴 줄 아는 “성숙함”. 5살 유빈, 7살 아빈, 10살 세빈, 그리고 39살의 나. 이 나이값이 바로 스스로 밸런스를 찾을 줄 아는 성숙함을 조금씩 더 키워나가는 것 아닐까? 그러면서 생각해본다. 스스로의 밸런스를 찾는 성숙함이 나는 커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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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영 (검색엔진컨텐츠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