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Carol (오 케롤) 노래 - 닐 세다카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노래이다. 경쾌한 락 음악에 맞춰 나오는 여성 코러스의 전주가 언제 들어도 기분을 좋게 만든다. 평범한 가사 내용이지만 멜로디 구성이 워낙 뛰어나 발표한 1959년 이래로 계속 애청되는 스탠다드 러브송이다. “오 케롤 나를 외면하지만 당신만을 사랑하는 바보예요. 당신이 나를 상처받게 했고 또한 나를 울게 만들었지요. 만약 나를 버리고 떠난다면 난 죽을 것만 같아요. 오직 당신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의 마음 속에 다른 사람은 없어요. 영원히 나를 떠나지 않는다고 말해줘요. 제가 원하는 것은 언제까지나 나의 연인으로 남아주기만 바랍니다. 오! 케롤 당신이 무엇을 하던 난 그대만을 사랑해요.”
이 노래를 부른 “날 세다카”는 1938 년 뉴욕 브룩클린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 재능이 뛰어나 학교 선생님이 부모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도록 권유했다. 어머니는 피아노 레슨비를 충당하기 위해 백화점 일을 시작했다. 부모님은 클래식 피아니스트 되기를 원했지만 그는 팝쪽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13세때 그의 피아노 연주를 들은 한 이웃의 여인이 문학에 소질이 있는 그의 사촌을 소개했다. 그의 이름은 “하워드 그린필드” 이 둘은 그후 “그린필드” 가 죽을 때 까지 함께 수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닐”은 작곡을 담당하고 “하워드”는 작사를 맡기로 했다. 함께 팀을 만든 후 자신들이 만든 노래를 불러 줄 가수를 물색 하던 중 이때 막 등장한 여가수 “카니 후란시스” 를 소개 받아 그녀를 위해 “Stupid Cupid”, “Falling”을 발표하자 이들의 등장을 주목한 레코드 산업계의 거목 “RCA 빅터”로 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
1958년 입사한 이후 “the diary”, “I go ape”, “Crying my heart out for you” 3 곡을 발표했지만 레코드 회사가 원하는 기대치에 미흡하자 계약 해지를 검토하고 있을 때 이들의 매니저인 “알 네빈스”가 레코드회사 중역에게 마지막 기회를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마지막이란 막다른 길에 놓인 “닐 세다카”는 1959년 당시에 히트곡 3개를 선택하여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이들의 멜로디, 코드 진행 방법 그리고 편곡 구조를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그런 후 만든 노래가 바로 우리가 지금도 즐겨 듣는 “오 케롤” 이다. 이 노래 성공 후 계속해서 힛트곡을 산출했다.
한국에서 불후의 명곡으로 칭송받고 있는 “You mean everything to me” 를 비롯해서 “Run Samson run”, “Calender girl”, ”Happy birthday sweet sixteen”, ”Next door to an
angel”을 발표했다. 1961년에는 영화 “보이 헌터” 주제곡인 “Where the boys are” 를 작곡 하기도 했다. 1962년에는 드디어 자신의 최고의 힛트송인 “Breaking up is hard to do”를 노래하여 밀리언 셀러를 달성했다. 또한 팝차트에서 넘버원을 기록하여 정상의 즐거움을 만끽 했으나 그 기쁨은 잠시 동안 이었다.
1964년들어 영국의 4인조 남성 보컬 그룹 “비틀스”를 위시하여 “롤링 스톤스 “, “데이브 클락 파이프”, “헐맨스 허미트”, ”에니멀스” 등 수많은 영국의 록 그룹들이 미국 진출을 시작하자 미국의 솔로 가수들 중 90% 이상은 설 자리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미국의 음반 산업 제작자들이 모든 초점을 이들에게 맞춰 투자를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발라드 가수들은 피해가 더 컸다. “닐 세다카” 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도 영국 록 그룹 폭풍을 피하기 위해 유럽으로 가야했다.
영국에서는 자신의 팬인 탑 가수 “엘턴 존” 이 운영하고 있는 레코드 회사 “로케트” 에서 취입하기도 했다. 그런 후 호주로 건너가 활동하다가 영국 록 그룹의 위세가 한물간 1970년대에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 “Laughter in the rain” 을 발표했다. 이 노래가 자신의 두 번째 넘버원 노래가 되자 그 기나긴 10년간의 공백기간 동안의 서러움, 그 힘든 시절의 어려움을 한꺼번에 씻어내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오 케롤” 의 “케롤” 은 “닐 세다카” 가 고교 시절 데이트하던 “케롤 킹”이 그 장본인이다. “케롤 킹”은 “닐 세다카”의 프로포즈를 거절하고 고교 시절 프럼 데이트 파트너인 “제리 골핀”을 선택했다.
그후 그녀는 “It’s too late” 를 비롯하여 “Will you love me tomorrow”, “You’ve got a friend”, “Loco motion”등 수 많은 노래를 작곡하여 20세기 최고 작곡자 중의 한 명으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그녀는 “제리 골핀”과 이혼 한 후 3명의 남자와 결혼할 만큼 힘든 결혼생활을 했었다.
“제리”는 새로운 여자를 만나 떠나 버렸다. 그 중 3 번째 결혼한 남편으로 부터는 주기적으로 구타 당했다고 본인의 자서전에 기록되어있다. 만약 그녀가 “닐 세다카” 를 선택했다면 순탄한 결혼 생활과 더 좋은 음악들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
정태문 라디오 DJ 및 팝 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