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을까

2018-02-24 (토)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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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세계를 보는 시각의 핵심은 ‘관계’이다. 세상 어느 것 하나 홀로 떨어진 것이 없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된 고리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인식이다.

세상만사가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불교는 인드라망의 비유로 설명한다. 인드라 즉 제석천이 머무는 궁전 위에는 수많은 구슬들을 꿰어 만든 그물이 드리워져 있다고 한다. 그물코로 연결된 구슬들은 모두 서로가 서로를 비추어서 결국 한 개의 구슬 안에 삼라만상의 모습이 다 담겨있다는 것이 요지이다.

최근 플로리다 고교 총기난사 사건 이후 학교 총격사건이 큰 이슈로 등장했다. 스물 전후의 아이들이 분노에 눈이 멀어 툭하면 총을 쏘아대고 있다. 아이들이 왜 이렇게 분노할까, 왜 저 죽을 것을 알면서 총을 들고 학교에 가서 무고한 아이들에게 총질을 하는 걸까.


어떤 원인의 구슬이 있어 이런 결과의 구슬이 만들어 지는 것인지, 어떤 현상이 투영되어 이런 현상이 생성되는 것인지, 아니면 이어져 있어야 할 그물들이 끊어져서 이런 파괴적 현상이 일어나는 것인지… 인드라의 그물망을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 총격사건을 막는 길은 교사들이 무장을 하는 것이다. 총기 소지하는 교사들에게 보너스를 주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들으면 ‘미국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탄식이 절로 나온다.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가 검색대를 통과해야 들어가는 곳이 되고, 무장 경비원들은 물론 교사들도 총을 곁에 두고 뭔가 이상한 낌새가 있는지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나라 - 무법천지의 어느 제3세계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최고의 국가로 자부심 강한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교사들을 무장시킨다고 해결될 일은 분명 아니다. 총을 총으로 막는 것은 임시방편일 뿐, 한계가 있다. 총기규제와 더불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 해결책을 모색하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하는데 정치인들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이 되었다. ‘총을 막는 것은 더 강력한 총뿐’이라는 전국총기협회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정치인들에게 ‘무소신의 겁쟁이들’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아버지 부재 미국(Fatherless America)’이라는 책이 큰 관심을 끌었었다. 저자인 데이빗 블랜켄혼은 미국사회가 직면한 가장 다급한 문제로 ‘아버지 부재’를 꼽았다. 이혼과 미혼모 출산이 증가하면서 아버지 없이 자라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미국의 어린이들 중 절반 이상은 성장기 중 상당기간을 아버지 없는 집안에서 자란다고 그는 지적했다. 청소년 범죄, 10대 임신, 마약남용, 도덕적 타락, 가정폭력, 노숙 등 사회문제들의 뿌리를 짚어 가보면 아버지 부재로 이어진다고 그는 주장했다.

모든 사회악의 근원을 아버지 부재로 돌리는 데 대해서는 당시 이견들이 있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그때 태어난 아이들이 20대 청년들이 된 지금 되돌아보면 그의 주장에 상당한 무게가 실린다.

당시 그가 가장 주목한 것은 남성 폭력이었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기혼 가정의 아버지라는 존재는 남성의 사회성을 길러주는 가장 믿을 만한 처방”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런데 결혼의 고리가 약해지고 끊어지면서 홀로 고립되고 자녀들로부터 멀어진 남성들이 많아지면서 남성 폭력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 총기 난사범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스무살 전후 남성으로 아버지 없이 자랐거나 사이가 나쁘다. 학교총기난사 사건의 원조 격인 콜럼바인 고교 사건, 최대의 사상자를 낸 버지니아텍 사건, 피해자들이 가장 어린 아이들이었던 샌디 훅 사건, 그리고 최근의 플로리다 고교 사건 범인들 모두가 이에 해당한다.


LA 인근 고등학교에서 30년 카운슬러로 일하고 은퇴한 김순진 박사는 불과 10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지금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 역시 가장 큰 원인을 가정의 붕괴에서 찾는다. 가정이 너무 쉽게 깨어지고 미국사회를 지탱하던 청교도적 가치관이 흔들리면서 많은 아이들이 보고 배울 역할 모델 없이, 버려진 듯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양산되는 것이 분노에 찬 아이들인데, 그들을 품어 줄 사람은 멀고 총기는 가까우니 총을 드는 일이 빈발한다.

가정에 역할모델이 귀할수록 중요한 것은 교사의 역할이다. 총을 차고 위험분자를 색출해내려는 시선으로 학생들을 대하는 것은 교사의 역할이 아니다. 어린 제자들을 화초 가꾸듯 보살피는 원예가의 시선, 점토덩이 같은 아이들을 멋진 도자기로 빚어내는 도예가의 시선이 필요하다. 그런 어른들이 필요하다. 인드라 망의 구슬들에 이런 시선들이 많이 담기기를 바란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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