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신문입니다!
2018-02-23 (금) 12:00:00
김미라(버클리문학회원)
아침이면, 와락 안기는 그대가 있어 행복하다.
새로운 이야기로 풋내음도 나고 알 만한 이들의 여유로운 근황도 있으며 나 같은 신출내기들의 여리여리 어설픈 이야기도 있고 때론 당찬 소신 발언에 속이 다 뻥 뚫리게 하는 너가 있어 새삼 맛있는 아침을 맞는다. 내 어릴 적 아침은 문지방 건너에 아버지 신문 뒤적이는 소리와 진한 잉크 냄새로 시작했다. 때론 간간이 내지르시는 아버지의 폭발적인 반응도 덤으로 들으면서 말이다.
더구나 신문은 부지런한 중, 고교생들의 흔하지 않은 아르바이트 수단이였으며 복잡한 거리나 차 안에도 신문을 팔았다. 내 두 남동생들 역시 새벽에 집집마다 신문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였지만 말이다.
나는 오랫동안 신문을 잊고 살아왔다. 더구나 요즈음처럼 텔레비전, 라디오, 컴퓨터로 쉽고도 재미있으면서 초고속화 시대에 왠 신문이 필요한가 싶었다. 아마 까마득히 잊었는지도 모른다.
지난달 마지막 월요일 아침이였다. 캘리포니아 1월답게 몇 일 동안 쉬지 않고 내리던 비가 오랫만에 맑게 개였다. 아침이 유난히 예뻤다. 불그레한 동녘에 간간이 쭉쭉 뻗은 팜 트리들, 한쌍의 새가 이른 데이트를 한다. “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새 아침이었다. 너무 따사로운 게 이게 무슨 겨울? 겨울 아닌 봄겨울 아침이였다.
우린 평소 오전 6시에 세탁소를 연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가게를 열었다. 그때 어렴풋하게 문 앞에 무엇인가 있었다. 얼른 주워 들고 보니 ‘한국일보’였다. 아! 커피향보다 더 구수한 고향 내음이 났다. 아! 잊고 있었던 아침 냄새였다. 미국에서의 ‘조간신문’, 이렇게 일찍 배달까지 해주는 것이 반갑기도 하면서 신기하기까지 했다. 날마다 새 얼굴을 하고 신문이 온다. 어제도 왔었고 오늘도 왔고 내일도 올 것이다.
오늘밤 오랫만에 일기를 쓴다. 몇 줄 안되는 일상을 두서없이 쓰다 친구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때 단짝이였던 구두쇠 해숙이.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오빠가 등록금을 내주었는데 그 오빠네가 담배와 신문을 팔았다. 그때는 조그마한 구멍가게가 친구에겐 창피한 일이였던 것 같았다. 공부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체육도 잘했던 팔방미인, 하지만 늘 기죽어 있던 친구. 그런 그녀가 대학 국문과 수석 졸업과 동시에 신문기자가 됐다. 열정적으로 변한 그녀 모습이 참 좋았다. 지금도 신문 속엔 그녀가 있다. 내일 아침 신문에 해숙이가 하는 말 “Me Too” 아! 너도 행복하구나.
<
김미라(버클리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