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감기와 삼계탕(Chicken Soup and Rice)

2018-02-16 (금)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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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교수 한 분이 기관지염(Bronchitis)에 걸려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이제 겨울 방학이 막 끝났는데 새학기 첫 강의도 못하게 되었다며 걱정을 하기에, 라틴어에 Prima schola alba est (첫 수업은 휴강)이라는 말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문자대로 번역하면 alba가 희다는 뜻이니“첫 수업은 희다”가 되겠지만, 일상용어로는 첫 수업을 휴강 하는 것을 뜻한다.

항생제를 복용한다기에 치킨수프 앤 라이스 (Chicken Soup and Rice)도 같이 먹어두는 게 좋겠다고 했더니, 내가 무슨 어린아이냐며 웃어넘겼다. 비과학적이라는 것이다.

아이들 셋을 키우며 자주 감기에 걸리는 것을 경험했다. 학교에 가서 한 아이가 감기에 걸려오면 온식구가 다 감기에 걸리던 시절이 이제는 다 추억이 되었다. 심한 경우에는 물론 의사와 상의하여 항생제를 복용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듣지도 않는 소위 ‘감기약’을 사다 먹이며 모리스 센닥 (Maurice Sendak)의 시(詩), 치킨수프 앤 라이스를 읽어주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치킨수프로 감기를 낫게 하기는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예전부터 오래 지속되는 습관이라면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사실 ‘비과학적’이라는 말을 잘 생각해 보면 그 말 자체가 비과학적일 수 있다.

과학은 철학의 부산물이다. 형이상학 혹은 형이 하학이라는 철학의 분야에서 과학이 탄생했는데 이것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우주 삼라만상을 논리적인 모순 없이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인간들의 이성적인 노력을 말한다.

그러나 인간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 유기적이고 긴밀한 관계 속에서 존재 한다는 대전제가 과학의 근본인 것을 우리는 흔히 잊고 있다.

항생제로 감기 바이러스를 직접 공격하여 감기를 치료하는 것은 과학적이고, 치킨수프를 먹는 것은 비과학적 이라는 생각 자체가 비과학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몸이 약해졌을 때 감기 바이러스는 쉽게 몸 안에 들어와 우리가 감기에 걸리는데, 어머님이 정성스럽게 끓여준 치킨수프를 먹고 몸이 건강해 지고, 건강하면 감기에 걸려도 비교적 고생을 적게 하고 자연스럽게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비과학적이란 말인가?

대학 시절에 한 교수님은 아스피린(Aspirin)이란 것이, 17세기 중국에 들어온 서양 신부들이 허준의 동의보감을 라틴어로 번역했는데 그 속에 나오는 처방을 독일 과학자들이 화학적으로 분석해서 만든 것이라 했다. 이것이 사실인지 확인해 본 적은 없다.

한약과 양약의 차이에서 우리는 동양인들의 포괄적인 사고와 서양인들의 분석적인 사고를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19세기 이후로 서양의 분석적인 사고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포괄적 사고 없이 분석적인 것만을 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마을을 건설한다는 큰 포괄적인 그림을 가지고 그 빈터 마다 예쁜 집을 잘 지어야 아름다운 마을이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는 분석적인 칸트(Kant)도 필요하고 포괄적인 노자(老子)도 필요 하다. 항생제도 필요하고 치킨수프도 필요하다. 병원 약보다는 좋은 음식이 참 보약이 아닌가. 감기환자가 병원마다 넘치는 이 손 시려운 계절에는 어머님이 끓여주시던 삼계탕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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