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과 신뢰의 기초

2018-02-15 (목) 박문규/LA평통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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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밸런타인스 데였다. 한국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밸런렌타인스 데이를 단지 ‘커플들을 위한 날’이라는 개념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여성 쪽에서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로 흔히들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곳 미국에서는 그런 날이 아니라 남녀노소 관계없이 꽃, 초콜릿, 선물 등을 카드에 담아 사랑하는 가족, 친구, 이웃, 동료 등과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날로 여기고 있다. 나는 그래서 밸런타인스 데이가 되면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손주들한테 카드를 보내곤 한다. 그러면 그 아이들도 꼭 카드를 만들어 보내온다.

서로 사랑하고 좋아하며 존경하는 사람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지 구태여 남자가 여자에게, 또는 여자가 남자에게 라고 구별하여 선물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곳과 한국 간의 큰 차이점인 것 같다. ‘사랑의 날’ 밸런타인스 데이에는 남녀구별이 필요 없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아름다운 사랑의 날 밸런타인스 데이를 맞으며 급속히 번지고 있는 ‘#Me Too’ 운동을 떠올리게 된다. 이 운동은 진정한 사랑의 관계에 있지 않은데 갑의 위치에 있으면서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함부로 성폭행, 성희롱 하는 행위를 고발하는 캠페인이다. 이제까지는 혼자만 알고 참으며 지내왔지만 더 이상 모른 척 덮어두고 참고 넘어갈 수 없어 “나도 당했다”며 고발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을 통해 더 이상 권력관계에서의 성폭력과 성희롱이 없어지기를 바란다. 이 운동의 시발점은 지난해 미국에서 일어난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이다. 한국에서는 서지현 검사가 8년 전 당시 법무부 핵심간부인 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처음 고백하면서 이 운동이 정치권, 대학가, 직장 등 사회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이제는 피해자가 아닌 사람들까지도 나서서 “당신의 아픔에 공감하며 함께 하겠다”는 뜻인 ‘#With you’로 이들을 응원하고 있다. #Me Too 운동을 벌이는 그들의 편에 함께 해서 성범죄에 맞서겠다는 응원이다. 또 더 나아가 일각에서는 ‘#Me First’로, 내 앞에서 성폭력이나 추행이 벌어졌을 때 절대로 방관하지 않고 나부터 나서서 성폭력을 막겠다는 뜻의 캠페인까지 시작되고 있다.

진정 사랑하는 관계가 되려면, 또 신뢰에 바탕을 둔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원한다면 기본적으로 주고받는 언어가 세련되고 순화되어야한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캠페인들이 남을 전혀 의식 하지 않은 채 처음 보는 여성을 가리키며 함부로 사용하는 언어가 실제로는 성추행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음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내 주위에서도 간혹 아무런 생각 없이 자기가 느끼는 대로 함부로 말하면서 그것을 마치 표현의 자유로 여기는 듯 하는 사람들을 흔히 보게 된다. 비록 연인사이는 아닐지라도 만남의 인연을 가지는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얼마나 좋을까, 밸런타인스 데이를 맞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렇다면 모두가 훨씬 더 밝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환한 웃음꽃이 절로 피어오른다.

<박문규/LA평통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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