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딸의 재능과 아빠의 헌신

2018-02-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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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보드 경기를 생전 처음 본 사람도, 하프파이프가 어떤 종목인지 모르는 사람도 클로이 김(17)의 연기를 보면 한 가지 확실하게 아는 것이 있다. ‘타고 났구나!’라는 사실이다.

반원통형 슬로프(파이프를 반으로 자른 모양)를 미끄러져 내려오고 솟구치면서 점프하고 회전하는 동작들이 얼마나 유연하고 자연스러운지 그들 동작이 위험천만한 묘기라는 사실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새가 하늘을 날 듯 가볍고 경쾌해서 마치 스노보드 타러 이 세상에 온 존재 같다. 그가 스노보드 천재로 불리는 이유이다.

남가주의 한인 2세 클로이 김이 12일 예상대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0년 4월생이니 만 17세로 올림픽 하프파이프 종목 최연소 우승이자, 여자 스노보드 최연소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위 선수와의 점수 차이는 무려 8점이 넘는다. 말 그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국이름 김 선인 클로이는 이날 이미 우승은 정해진 상태로 3차 시기를 맞았다. 적당히 해도 금메달을 딸 수 있었지만 클로이는 두 차례 연속 3바퀴 회전을 성공하면서 98.25점이라는 최고 점수를 받았다.

“더 잘 할 수도 있었다는 걸 알면서 금메달을 땄다면 만족스럽지 않았을 거예요. 세 번째 시기는 나를 위해 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금메달리스트 클로이를 보면서 가장 가슴 벅찬 사람은 아버지 김종진 씨일 것이다. 딸 뒷바라지를 위해 생업을 접는 일대결심을 했을 당시 그는 두 가지를 꿈꿨다. 첫째는 딸의 성공, 둘째는 이민자로서 미국 역사에 김씨 성을 자랑스럽게 남기는 것이었다. 한인 선수로서 쾌거를 이루면 미국사회에서 한인들의 위상이 올라가고, 모국 한국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질 것이라고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클로이와 스노보드의 인연은 우연히 시작되었다. 2000년대 중반 김씨는 온 가족을 데리고 스노보드를 타러 가고 싶었지만 아내도 다른 두 딸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데리고 간 것이 4살짜리 막내 클로이였다. 남가주 한인들이라면 누구나 가봤을 마운틴 하이로 첫 눈 놀이를 갔는데 꼬마는 눈을 너무나 좋아했다.

그런 딸에게 아빠는 이베이에서 25달러짜리 스노보드를 하나 사주었다. 5살이 되자 클로이는 작은 점프를 시도하면서, 넘어지면 일어나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며 지칠 줄을 몰랐다. 이듬해 아빠는 6살짜리 딸을 마운틴 하이 스노보드 팀에 들어가게 했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였지요. 보통 한번 레슨비가 100달러인데, 팀에 들어가면 시즌 전체 비용이 450달러밖에 안 됐든요.”

첫 시즌 후 클로이는 레이크 타호에서 열린 전미 스노보드협회 챔피언십 주니어 대회에 출전했다. 대회에 나오라니 그냥 가본 것인데 클로이는 동메달을 3개나 덜컥 딴 것이었다.

이후 선수 만들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스위스 2년 유학, 맘모스 스노보드 팀 합류 등이다. 아빠는 매주 금요일 새벽 2시면 일어나 잠든 딸을 뒷좌석에 태우고 5시간을 운전해 맘모스로 가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금메달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딸의 타고난 재능과 아버지의 헌신이 행복하게 버무려진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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