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북한의 정치공주’

2018-02-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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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잡지 보그지가 2011년 시리아의 독재자 알 아사드의 부인인 아스마 알 아사드를 모델로 선 보이면서 프로필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훤칠한 스타일에 세련된 패션 감각 등으로 보그지 등장과 함께 그녀에게는 ‘사막의 장미’라는 찬사가 따랐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지옥의 퍼스트레이디’로 불린다.

자국민을 수십만이나 학살했다. 그것도 화학무기를 사용해 어린이까지 무차별로. 알 아사드가 저지른 그 반인륜범죄가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만행과 아스마는 무관하지 않은가 하는 변명이 한 때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게 아니었다. 내란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명품 쇼핑에 여념이 없다. 거기다가 아스마가 ‘학살의 치어리더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사막의 장미’는 ‘지옥의 퍼스트레이디’로 추락했다. 보그지는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된 셈이다.

“적의 적은 친구다. 아니. 적의 적이라고 모두 친구는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사이가 나쁜 진보성향의 미국의 주류언론 중 일부가 김여정의 방남 행보와 관련해 ‘북한의 이방카’ 등으로 호의적 보도를 한 것에 대한 뉴욕포스트지의 비판이다.

CNN은 올림픽에 ‘외교 댄스’부문이 있다면 금메달 후보라고 보도했다. 미소와 악수, 방명록에 남긴 따뜻한 메시지로 평창올림픽 참석 단 하루 동안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치켜세웠다. 김여정을 ‘북한의 정치공주’로 표현한 워싱턴 포스트는 ‘모나리자의 얼굴’로 비유하기도 했다.

반면 뉴욕포스트를 비롯한 일부 보수언론들은 독재자 김정은의 여동생에게 그렇게 찬사를 보내는 것이 옳은 일인지를 따져 묻고 있다.

세계 최악의 인권탄압국이다. 평화 시에 수백만의 주민을 굶겨 죽였으며 수십만을 정치범 수용소에 가둔 것으로도 모자라 전 주민을 사실상 노예화했다. 거기에 핵무기로 한국을, 더 나가 미국을 초토화시키겠다고 위협을 해댄다. 이것이 김정은의 북한체제의 실상이다.

김여정은 그러면 북한이라는 체제가 매일 같이 저지르고 있는 반인륜범죄와 핵위협, 이런 것과 무관한 것인가. 이에 대해 새삼 질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김여정은 북한 체제가 저지르는 만행의 무고한 방관자가 결코 아니다. 이른바 ‘백두공주’라는 사실은 차치하고도 북한 노동당 선전조직부부장이 그녀가 지닌 공식직함이다.


선전선동부는 최고영도자에 대한 우상화와 체제 선전, 주민에 대한 사상교육을 담당하는 부서로 조직지도부와 함께 노동당의 양대 핵심 부서다. 북한체제가 저지르는 온갖 범죄의 감독자에 치어리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지옥의 퍼스트시스터’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런 김여정을 문재인 대통령은 네 번이나 만났다. 펜스 미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와는 사진 한 번 찍는 정도로 그쳤다. 대통령이 그럴 정도니 총리에서 장차관들이 도열하다 시피 하면서 김여정 환대에 바빠도 아주 바빴던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평화올림픽도, 남북대화도 좋지만 김여정 환대가 지나치다”며 마음 불편한 사람들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도 많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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